논픽션 父子 인생기록한 책 '우주선과 카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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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가깝고도 먼 사이. 나이가 들수록 친구처럼 지내는 모녀지간과 달리 살뜰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아 무덤덤한 부자지간. 때로는 서로에 대한 지나친 믿음으로 대화 단절까지 불러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은 동서양이 별반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인생 궤적을 걷는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와 사랑을 그린 논픽션 '우주선과 카누' (창작과비평사刊) . 이 책은 미국의 출판기획가 케네스 브라워가 천체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과 환경보호주의자인 아들 조지 다이슨을 수년간 직접 인터뷰해 적은 부자의 인생기록이다.

프린스턴대 교수이기도 한 프리먼은 월반을 거듭해 보통 학생보다 3년 빨리 캠브리지대 학생이 된 신동. 반면 아들 조지는 14세에 마약에 손대 학교에서 쫓겨난 문제아이다.

어려서부터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아버지는 아들의 생활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16세에 집을 나가 캐나다의 숲속에 나무집을 짓고 살며 탐험대의 접시닦이.요리사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 게다가 우주선 오라이언호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인 자신과 달리 원주민이나 타고 다니는 카누에 매달려 젊은 날을 보내고 있는 아들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같았다.

어느날 16살난 아들은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낸 틀 속에서 완전히 굳혀져 버렸어. 내 아들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선입관에 따라 움직이는 대리인 같아" 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존경받는 물리학자인 아버지의 그늘 때문에 숨 막힐 지경이다" 라고 털어놓는다.

영하 17도의 추운 겨울에 야외 캠핑을 고집하는 어린 아들을 데려다 주고는 걱정에 못이겨 먼 발치서 아들의 텐트를 지켜보던 아버지. 훤칠한 키와 커다란 코를 쏙 빼닮은 외아들이 흔들어주던 그 손에서 느껴지던 부자지간의 정. 그런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제 큰 아들은 훌쩍 집을 나가버렸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의식이 깊은 아들이 2차세계대전 당시 공군에서 수학자 노릇을 하며 효과적 폭격을 위해 열폭풍을 일으키는 법을 연구했던 아버지와 대화를 할 수 없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가출 5년후 아들은 아버지를 숲속으로 초대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카누 마운트 페어웨더호로 타고 닷새간의 여행을 떠난다.

칠흑같은 별빛바다에서 함께 노를 젓고 외딴 섬에서 단둘이 무릎을 마주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쌓인 앙금을 씻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결국 하나였다" 고. 비전과 꿈이라는 공통분모가 그들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류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해법으로써 아버지는 우주공간을, 아들은 미개척지 자연을 택했던 것만 달랐을 뿐이었다.

이 책은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가족과 사회를 건강하게 이끄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평범한 결론을 부자간의 서정적 관계.이야기를 통해 내리고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 차이로 일어나는 세대갈등의 해소, 문명에 대한 대안과 핵가족의 동질성 찾기라는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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