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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로 나온 20분짜리 애니…컷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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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무라 감독의 ‘은하의 물고기’(上)는 서정적 그림을 인간의 손을 빌리지 않고 컴퓨터로 만들어냈다. ‘노인과 바다’(下)의 2만9000개 컷은 모두 페트로프 감독이 직접 그린 유화다.

한 사람의 애니메이터가 온종일 그린 그림을 이어붙여도 스크린 위에서는 불과 몇 초밖에 되지 않는다.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애니메이션의 이런 제작과정을 생각하면 단편이라고 해도 그 무게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해외에서 제작된 수작 애니메이션 '노인과 바다'(썬미디어)와 '은하의 물고기'(뉴타입DVD.)가 국내에 DVD로 출시된다. 상영시간이 각각 20여분이어서 극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단편들인데, 그 독특한 기법과 예술성 역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수준이다.

러시아.캐나다.일본이 공동제작한'노인과 바다'는 1999년 문호 헤밍웨이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품이다. 정지된 영상만 놓고 보면 놀랍게도 각각 한 편씩의 온전한 유화 작품같다. 애니메이션하면 흔히 떠올리는 검은 테두리 선도 없다. 널리 알려진 대로, 작품의 주인공은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다 마침내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만나 사투를 벌이는 늙은 어부다. 유화풍의 두꺼운 질감을 입힌 그림체는 출렁이는 물살과 햇살, 그 배경에 펼쳐지는 노인의 고독한 싸움을 역동적으로 그려내는 데 더할 나위없이 효과적이다. 마치 인상파의 그림을 동영상으로 만든 듯한 이 작품을 보고 있자면,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animate)는, 애니메이션의 본뜻을 체감할 수 있다. 2000년 프랑스의 안시 페스티벌과 미국의 아카데미상에서 모두 단편애니메이션 최고상을 받은 작품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유리 위에 유화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한 프레임씩 촬영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러시아 감독 알렉산더 페트로프의 고독한 제작 과정은 작품 속 늙은 어부의 사투 못지않았다. 그는 2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위해 총 2만9000장의 그림을 2년여에 걸쳐 혼자서 그렸다. 작품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대목에서는 붓 대신 주로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감독의 모습이 소개된다.

반면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다무라 시게루 감독의 '은하의 물고기'는 환상적인 영상과 독창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천체를 관측해오던 할아버지와 소년은 별자리에 이변이 생긴 것을 발견한다. 곰자리에 낯선 별 하나가 나타났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물고기 괴물로 변신해 다른 별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은하수라고 부르는 그대로, 할아버지와 소년이 배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밤하늘을 건너는 환상적인 장면을 표현해낸다. 물살 아래로는 인간세상이 고스란히 비춰진다. 애니메이션이 아니고는 눈으로 보기 힘든 상상력이다. 두 사람이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해치우러 가는 길에는 '빌딩 인간'같은 독특한 생물도 모습을 내민다.

일본보다 오히려 유럽풍에 가까운 이런 서정적인 그림체를 만들어낸 제작방식은 93년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종이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매킨토시 컴퓨터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은하의 물고기'는 컴퓨터 게임용 동영상 등에나 쓰이던 디지털 기법을 애니메이션 '작품'에는 처음으로 본격 도입한 사례로 꼽힌다. 만들어진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림체의 선명함이 요즘 작품에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다.

'노인과 바다' 역시 아날로그적인 그림체 이면에 기술적인 성취가 숨겨져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흔치 않게, 초대형 아이맥스 스크린용으로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두 편 모두 고화질의 DVD로 감상할 만한 작품들이다. 출시사 측은 "'은하의 물고기'의 반응이 좋으면, '고래의 도약' 같은 다무라 감독의 다른 단편도 DVD로 소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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