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컬처코드] #11 -‘워낭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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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축연을 열어도 부족할 날에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그만큼 독립영화계가 ‘워낭소리’의 흥행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워낭소리’의 흥행과 별개로 독립영화 일반의 제작여건은 날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영화계와 정치적 대립각을 세워온 정부는 공공연하게 제작 지원을 줄여 왔다. 대통령의 관람이라는 정치 이벤트를 넘어선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나오는 까닭이다.

#한편 독립영화계 일각에서는 ‘워낭소리’가 정통 다큐에서 벗어났다는 지적도 한다. 대중적 소통에는 성공했더라도 다큐로서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워낭소리’가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스토리텔링, 드라마타이즈 기법을 문제삼는다. 다큐에서는 현장의 구성보다 현장의 포착이 중요하며, 촬영과정이나 방식 또한 다큐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당수 관객도 이런 의문을 갖는다. 클로즈업된 소가 할아버지를 보고 눈물 흘리는데, 실제 소가 그 장면에서 운 게 맞느냐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대 앞을 지나는 장면도 감독의 주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 ‘워낭소리’에는 사운드·이미지·편집의 연출이 상당하다. 영화 내내 워낭소리가 깔리고, 현장음 대신 새·벌레소리가 후시 효과음으로 들어갔다. 극중 시간도 앞뒤가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를 과도한 연출, 사실의 왜곡으로 보는 시각은 지나치게 일면적인 것이다. 어쩌면 ‘워낭소리’의 진정한 수확은 이처럼 다큐 제작의 새롭고 세계적인 흐름을 국내 관객들에게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이미 다큐와 픽션의 경계는 무너졌고, 연출 없는 다큐는 불가능하며, 심지어 “모두가 극영화, 더 이상 다큐는 없다”는 선언도 나왔다.

이충렬 감독은 ‘워낭소리’를 “다큐라기보다 논픽션물”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수십 개월 찍은 일상의 조각들을 흩트려놓고 ‘엑기스’만 추려 붙였다. 원 정서와 관계의 원형질만 훼손 안 했다면 문제 없다”고도 말했다. 남인영 동서대 영화학과 교수 역시 “소와 할아버지의 관계가 친구같지 않은데 친구처럼 묘사했을 때 비로소 조작”이라며 “노부부와 소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낸 능력, 정교한 연출력은 이 영화의 뛰어난 장점”이라고 평했다. 어쩌면 다큐를 있는 사실 그대로의 기록으로 보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협애한 발상일 수 있다. ‘워낭소리’는 흥행기록만 깬 것이 아니라 다큐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는 중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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