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1박 2일 ①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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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기도 하다. 의료장비와 신약, 새로운 시술이 하루게 다르게 발전하며 환자들에게 선보인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질병에 맞서는 의료진,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 이들의 긴박하고, 진솔한 하루를 담는 ‘병원, 1박2일’을 시작한다.

고종관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스케치 1

"응급환잡니다.”

지난달 16일 오후 4시15분. 전화를 받은 간호사의 한마디가 신생아 중환자실의 평온을 깬다. 이어지는 다급한 소리. "아기 호흡 없고, 심장박동도 멈춘 상태랍니다. 아프가 점수 3점 이하(10점 만점으로 3점이면 가사 상태).”

마침 전공의 실습을 위해 중환자실에 들렀던 배종우 교수가 지시를 한다. "인큐베이터 비우고, CPR(심폐소생술) 준비하세요.” 두 명의 전공의와 간호사 5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10여 분도 안 돼 신생아가 들이닥친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지만 아기는 미동조차 없다. 얼마나 급했을까. 경기도 성남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달려온 신생아의 창백한 몸엔 미처 닦지 못한 핏자국이 선명하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흉부 압박 세 번에 공기 펌프 한 번. 앰뷰백(공기 펌프)을 잡은 권영란 전공의가 구령을 붙이고, 배 교수가 직접 심장마사지를 시작했다. 10초·20초·30초…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 1분여가 지났지만 아기의 심장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는다. 이대로 어린 생명을 떠나보낼 것인가. 의료진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에프네프린(강심제)을 더 투입합시다!” 배 교수의 화급한 지시. 백승아 전공의가 아기의 팔목에서 실낱같은 혈관을 찾아 주사기를 꽂는다. 계속되는 심장 마사지, 배 교수의 이마에 진땀이 배어나온다. 이번에는 심장에 직접 바늘을 찔러 에프네프린을 추가한다.

이렇게 다시 1분 정도가 지났을까. 수시로 청진기 소리를 듣던 배 교수가 "왔다!”고 외친다. 전공의와 간호사들도 후렴이라도 하듯 "살았다!”고 외친다. 감시장치 모니터엔 심장박동을 알리는 생명 그래프가 힘차게 그려지고 있었다. 중환자실의 무거운 긴장이 한순간에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몇 분 뒤 아기가 힘겹게 눈을 뜬다. "괜찮아? 언니, 놀랐잖아.” 아기의 몸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닦아 주며 간호사가 첫마디 인사를 건넨다.



스케치 2

“이런 일요? 자주 있어요. 그래도 오늘은 아기가 낮에 와서 다행이에요.” 24시간 신생아 중환자실을 돌보는 권영란 전공의의 말이다. 이곳 18개의 보육기는 늘 만원이다. 2㎏ 이하의 미숙아와 생명을 다투는 신생아들이 이곳에서 실낱같은 생명을 키워 나간다. 건강하게 성장한 아기에겐 백일잔치를 해주는 기쁨도 맛보지만 가끔씩 세상을 떠나는 아기가 있어 이곳 식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제가 맡은 아기 중 세 명이 떠났어요. 처음엔 ‘내가 잘못한 게 없나’하고 자책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아기를 돌봐요.”

오전 11시쯤. 신생아 감시장치 모니터에 떠 있는 숫자 하나가 깜박이며 알람이 울린다.

길○희 산모의 쌍둥이 중 둘째. 아직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이름도 없다. 임신 29주 2일 만에 1440g으로 태어나 수분이 빠져나간 지금은 1250g으로 몸무게가 줄었다. 태어날 때 폐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인공호흡기에 의존했다.

“과거 호흡곤란증은 미숙아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었죠. 폐가 팽창하는 데 필요한 폐 표면의 윤활 성분이 부족한 병입니다. 다행히 이 같은 미숙아를 위해 폐표면활성제(소에서 추출)가 개발돼 사망률이 급감했습니다.” 국내엔 배 교수가 처음 도입, 1990년대 초 40%대의 미숙아 사망률이 현재 14%대로 떨어졌다.

길씨의 둘째 아기도 이 약물 도움으로 생존했다. 8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뗐지만 여전히 자가호흡은 불안한 상태. 아기가 자지러질 듯 울면서 모니터의 심박동수와 호흡이 정상을 벗어났다.

급하게 손을 소독한 강진선 파트장이 손 투입구를 통해 아이를 달래기 시작한다. 엄마 배 속에 있는 자세를 취하게 하며 다독거리자 신기하게 울음을 멈춘다. 15년 경력의 강 파트장은 “간호사들은 울음소리만 들어도 배가 고픈지, 아픈지 안다”고 말했다.



스케치 3

오후 8시. 산모들이 집에서 짠 모유를 갖고 면회 오는 시간이다. 세 시간마다 하루 여덟 차례 먹을 양을 팩에 넣어 얼려 온다. "특히 ‘멜라닌 파동’ 이후 거의 모든 엄마가 모유를 가져온다”고 강 파트장은 설명했다. 1000g 이하 신생아는 1회 1∼2g부터 모유를 먹이기 시작한다. 모자라는 영양은 고영양 주사로 보충한다.

"우리 아기 몇 그램이에요?” 면회 온 부모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이 아기 몸무게다. 체중 증가는 아기의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엔 쌍둥이가 많다. 1월 7일 출생한 정○진씨의 세 아이를 비롯해 두 쌍둥이가 더 있다. 정씨의 자녀 중 막내는 870g으로 태어나 지금은 인공호흡기를 뗀 상태. 하지만 장염이 있어 10일째 금식하고 있다. 수유를 하면 장이 괴사돼 치명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

원내에서 식사를 하고 중환자실을 찾은 배 교수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 몇 시간 전 살아났던 응급 신생아의 불안한 건강 상태가 그의 퇴근을 막고 있다.

"출산 시 산모의 태반이 일찍 떨어져 나오면서 아기에게 산소 공급이 안 된 거죠. 아기가 팔을 휘젓는 모습이 단순한 움직임 같지 같아요.” 산소 부족으로 뇌가 영향을 받은 듯하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는 아빠 장○○씨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맺힌다. 35세 동갑내기 부부가 얻은 첫아기란다.

"항경련제를 바꾸고 용량을 늘려 봅시다. 그리고 아까 수혈했는데도 헤모글로빈 수치가 부족하니 혈액을 추가하고요.”

17일 오전 1시30분. 퇴근을 하지 못한 배 교수가 다시 중환자실로 올라왔다. 아기의 혈색도 돌아왔고, 경련도 멈췄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지만 자가호흡 비중이 크고, 모니터가 보여주는 수치는 모두 정상이다. 하지만 아기의 뇌가 건강한지는 며칠 기다려봐야 한다. 돌아서는 배 교수의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다.



심장을 살려라, 1분30초의 싸움

응급 상황에서 신생아를 살리는 것은 초를 다투는 시간이다. 호흡·심박 수·피부색을 평가해 심장마사지와 에프네프린(강심제)을 투여하기까지 심폐소생술에 걸리는 시간은 1분30초를 넘지 않아야 한다. 신생아가 살아나면 의료진은 예측하기 힘든 갖가지 합병증과 싸우며 몸무게를 늘리는 지구전에 들어간다. 모든 장기가 미성숙해 뇌손상·실명·기관지 폐이형성증과 같은 돌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신생아 중환자실을 갖춘 곳은 2, 3차 의료기관급 110여 곳. 보육기는 의원급까지 포함해도 1526개에 불과하다. 매년 출생하는 2500g 미만 저출생아 3만여 명, 이 중 1500g 미만의 극소저출생아 5000여 명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병원이 신생아 시설에 과감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수익성이 낮기 때문. 한 대에 1억원을 호가하는 보육기와 24시간 감시를 위해 투입되는 고급 인력에 비해 병원이 받는 보험수가가 낮다는 것이다.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소아과 배종우 교수는 “신생아 중환자실 입원료가 하루 15만원 선에 불과해 보육기를 늘릴수록 적자를 보는 상황”이라며 “저출산시대에 이른둥이를 잘 키워 국가의 동량으로 만드는 것은 출산 장려 정책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작은 몸무게의 신생아 생존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살린 440g(임신기간 22주3일)의 초극소저체중아가 최고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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