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제호에 언론인 별명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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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호 08면

기원전 5세기 중반인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에서 사용된 주화의 뒷면. 앞면에는 지혜·학문·예술·전쟁의 여신인 아테나의 두상이 새겨졌다.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이자 전쟁, 예술, 학문, 상업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고대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로마식으로 발음한 것이 미네르바다. 미네르바가 항상 대동하고 다닌 부엉이는 신의 새로 지혜의 상징이다. 고구려의 영물인 까마귀 삼족오(三足烏)와 비교할 수 있다.

미네르바 부엉이는 언론의 상징

이집트 상형문자 중 M이 있다. 부엉이 귀를 상형화한 것이다. 영어의 알파벳 중 M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부엉이는 잘 보고 잘 듣는 신조(神鳥)다. 세상을 잘 보고 들어 보도하는 언론과의 연관 관계를 읽을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은 그의 저서 『법철학』 서문을 통해 신화 속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부활시켰다. 낮에 주변을 살피다 밤에 움직이는 부엉이의 지혜를 강조한 것이다. 헤겔은 언론과 관련해 여론의 양면성을 지적했다. 거짓과 진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너나없이 비난하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아는 것처럼 지껄여대는 여론은 파괴적 추측이나 비난을 내세운다”고 비판했다. 사익보다는 공익을 추구하는 언론을 강조 했다. 고려대 언론학부 김경근 명예교수는 “헤겔의 언론사상이 미국의 언론사회책임이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했다. 언론의 선정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허친스 보고서는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이라는 책으로 집대성됐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진실을 발견하는 언론 철학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아가 부엉이는 보이지 않는 비리나 허위를 파헤치는 언론의 상징이다. 부엉이 눈같이 감춰진 사회의 어두운 곳을 조명하는 언론 목탁의 역할을 말한다. 탐사 저널리즘의 기원을 미네르바의 부엉이에서 찾기도 한다.

이런 특성을 반영, 17세기 초 유럽에서 처음 신문이 창간되면서 미네르바가 각광을 받는다. 당시 영국에서 처음 ‘미네르바’라는 출판사가 설립된다. 이후 18세기엔 미네르바 이름을 가진 수많은 잡지가 창간됐다.

20세기에 들어 수많은 언론들이 미네르바 제호를 사용하고 있고, 다른 언론 활동으로까지 확대된다. 미국 뉴욕에 미네르바 저널리즘 스쿨이 설립됐다. 대학신문들도 미네르바 제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두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미네르바 IPTV방송까지 설립됐다. 미네르바라는 별명을 갖은 언론인도 여럿 있다.

미네르바라는 이름의 수많은 상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여성단체가 만든 미네르바 상이다. 2008년엔 이 상을 미국 방송의 대스타인 오프라 윈프리 쇼가 받았다. 최근 필리핀에서는 미네르바 방송국이 세워지기도 했다.

21세기 한국에서 인터넷 공론장이 만개하고 있다. 헤겔이 지적한 대로 공론장에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고 있다. 사이비 부엉이가 활개를 칠 수도 있다. 한국판 미네르바의 소동이 한 예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전범수 교수는 “기존 언론은 미네르바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욱 심층성·전문성·윤리성에 기초한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며 “언론은 신뢰가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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