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기자의 BOOK KEY]커피&카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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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호 12면

‘악마같이 검고 지옥같이 뜨겁되, 천사처럼 깨끗하고 사랑처럼 달콤한’ 음료.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소년이 우연히 발견했다는 빨간 콩을 달인 커피는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독이냐 약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18세기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는 커피를 독이라 믿었다. 살인범 두 명을 골라 각각 커피와 차를 매일 마시게 하고는 의사를 붙여 관찰하도록 했는데 가장 먼저 세상을 뜬 사람은 두 의사였다. 그리고 1792년 왕이 암살되었고, 수년이 흐른 뒤에야 살인범 중 한 명이 83세로 숨졌는데 줄곧 차를 마신 쪽이었다. 한 편의 코미디지만 커피를 문명과 교양, 낭만과 자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애호가들에겐 나쁘지 않은 일화다.

그런데 이들에게 더욱 힘을 주는 책이 있다. 『커피 한 잔의 힘』(오카 기타로 지음, 시금치)은 커피가 알코올성 간경변증, 2형 당뇨병, 고지혈증, 심지어 간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편다. 약학박사인 지은이에 따르면 볶은 커피에는 300종 이상의 성분이 있으며 그중엔 아직 화학구조조차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단다. 이 같은 신묘함에, 국제 학술논문을 인용하니 어지간히 믿을 만하달밖에. 그런데도 현대 의학이 커피를 외면하는 것은 설사 커피를 이용한 약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약 대신 커피를 마실 것이란 추측 때문일 것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물론 건강을 위해 커피를 마시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커피가 문명과 교양·낭만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여기에 외국의 유명 체인점 덕분에 ‘테이크아웃’이란 근사한 유행어와 함께 ‘여유’와 ‘효율’의 영예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잠시 생각해 볼 일이다. 커피의 교역액수는 품목별로는 석유에 이은 세계 2위이지만 이윤의 99%는 거대 커피회사와 소매업자·수출입업자·중간상인의 몫이며 재배농가의 몫은 1% 미만이란 사실을. 그리고 아시아·남미·아프리카의 2500만 농부가 지난 20여 년 동안 소득이 늘지 않은 유일한 집단이란 사실도.

『자바 트레커』(딘 사이컨 지음, 황소걸음)는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공정무역’에 노력해 온 미국 시민운동가의 이야기다. 1993년 ‘딘스 빈스 유기농 커피회사’를 차린 후 제3세계 농부들을 찾아다니며 본 참상과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내가 하는 일은 아주 자그마한 것에 불과하다”며 “저 여러 불꽃 속에 당신의 불꽃을 보태십시오”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모닝커피가 불편해질지 모른다. 그럼 『모든 요일의 카페』(이명석 글·사진, 효형출판)의 지은이를 따라 나설 일이다. 때로는 발품을 팔아, 때로는 ‘찬찬’이란 스쿠터를 타고 섭렵한 전국 구석구석에 숨은 보석 같은 카페 53곳을 곁눈질할 수 있다.

분위기·인테리어·소품이며 커피의 역사·종류 등 가위 카페의 모든 것으로, 그러나 역시 커피 이야기로 엮어진 책갈피에선 그야말로 그윽한 커피 향내가 난다. 그러다가 강릉의 커피공장 ‘테라로사’에서 커피 묘목을 얻어서는 “서울의 콘크리트 정글로 들어가기 전에 먼 고향에 인사할 수 있도록” 동해 바닷가에 덩그마니 놓아 두고 찍은 사진을 보며 슬며시 웃음 짓는다면 그게 삶의 향기 아닐까.


경력 27년차 기자로 고려대 초빙교수를 거쳐 출판을 맡고 있다. 특기 책 읽기.『맛있는 책읽기』등 3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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