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스케치]일본 조선대학 방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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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에 있는 조선대학은 비록 조총련이 세웠지만 일찍이 해외에 우리 민족의 힘으로 세운 거의 유일한 대학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평양에 있는 대학만큼이나 가깝고도 먼 이방지대라 할 만하다.

필자 일행이 조선대학을 방문한 것은 지난달 22일 오전 10시.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길수) 와 재일조선역사고고학협회 (회장 全浩天)가 도쿄 가쿠슈인 (學習院) 대학에서 공동주최하고 남.북한과 중.일 학자들이 참가한 제3회 고구려국제학술대회를 계기로 공식 방문한 것이다.

아마도 남한 학자들이 조선대학을 공식 방문한 것은 처음있는 일로 알고 있다.

원래 고구려국제학술대회를 도쿄에서 개최하게 된 것은 북한학자들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는데 다른 학술회의에 비해 충실한 논문을 사전에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참가의사를 표명하였으나 마지막 순간에 회의 참가가 여의치 못하게 되자 조선대학 교수들이 위임을 받아 대독하였다.

의미있었던 것은 북한 학자들을 대신한 조선대학 교수들이 쟁점이 되는 문제에 대해 다음 기회에 평양에 가서 그 의문점을 해결하자고 한 점이다.

조선대학 방문 문제는 학술회의 준비과정에서 나왔다.

이 행사에 참가하는 이 대학 교수들에게 제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공식방문으로 스케줄에 잡혀있었던 것. 조선대학을 처음 방문한다는 설레임의 한편으로 일말의 우려도 느끼면서 도쿄 교외의 무사시노 (武藏野) 벌판의 고다이라 (小平) 시에 있는 이 대학에 도착한 것은 복더위가 한창이던 때였다.

일행의 우려를 씻어주려는 듯 교문에는 부학장인 현원석 (玄源錫) 박사와 고구려사 연구로 우리 학계에도 잘 알려진 고관민 (高寬敏) 교수가 학생들을 인솔하고 마중을 나와 열렬한 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교사 왼편에 있는 박물관 3층 회의실에서 남시우 (南時雨) 학장으로부터 조선대학의 연혁을 소개받았다.

조선대학은 아마도 우리말로 강의가 이뤄지기는 해외 동포를 위한 대학중 유일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여학생들의 경우 아직도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 복장이 일반적인데 전통에 대한 강렬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선진대국 일본 속의 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였다.

교내 곳곳을 안내 받으면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박물관 교정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모형이었다.

박물관 1층은 우리나라의 자연사박물관이며 2.3층은 역사민속박물관인데 여기에는 국보급 고려청자를 비롯 다양한 유물이 소장돼 있었다.

이번 학술회의를 계기로 북한 화가들이 직접 그린 70여점의 실물 크기 고구려벽화 모사도와 함께, 학술회의에서도 피장자가 누구인가 (고구려 대왕인가 귀화인인가) 로 쟁점이 되었던 안악 (安岳) 3호분과 덕흥리 (德興里) 고분의 벽화무덤 모형이 발견 당시 모습으로 복원돼있어 학자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광개토대황비 앞에서 기념 촬영을 마친 뒤 바쁜 일정에 쫓기는 일행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재회를 약속하며 약 3시간의 방문을 마치고 교문을 나섰다.

앞으로 우리 학계와 다양한 교류를 희망한다는 南학장의 인사말은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앞으로 좀더 마음을 열고 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서영수 [단국대.동양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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