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영화' 나쁘다는 견해 … 김정룡 영화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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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집나와 서성이는 10대와 길에 누운 행려, 그리고 가출.본드.배신.절도.강간.폭행.돈.술과 반항과 환각과 무기력의 나날, 그리하여 아수라의 퍼포먼스로 미어터진 프레임. 10대의 일탈을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영화에서 미래지향적인 대안이랄지 문제의 해법을 예견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으되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 수있을까. 영화는 현실의 병을 함께 앓을 수 있을지언정 해결해주진 못한다.

그건 극장 밖으로 빠져나간 사람들의 삶의 몫이다.

요는 우리 현실의 오랜 지병을 얼마나 낯설게 앓고 늘어놓으며 신음하는가에 있다.

감독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완성되지 않은 열린 체제를 지향한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나쁜 영화' 는 의사 (擬似) 다큐멘터리 식으로 찍은 극영화, 즉 연출된 드라마다.

'나쁜' 아이들은 분명 연기를 했다.

내가 문제삼는 건 현실을 선택하고 배열한 기준과 맥락이며 이를 실현한 작가의 이데올로기다.

단언하건대 사심없는 카메라란 존재하지 않는다.

풀어진 에피소드들 사이사이로 긴장의 고조를 위해 은연중에, 또는 무의식 중에 고려된 장치들 : 볼링장에서 추락하는 새의 주관적 시점 쇼트, 윤간, 처량한 음악, 사랑하는 친구에게 퍼부어진 위악적인 폭력, '나쁜' 연기의 사실다움을 강조하려 애쓰는 들고찍기…. 이런 상황과 양식적 기법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궁극적으로 센세이셔널리즘에 복무한다.

규범적 세계의 반대항은 확실히 정상이라 불리는 사회구조의 비정상성과 폭력성의 산물이다.

그러나 영화는 10대를 주인공으로 삼아 본능과 순간적 감정이 자신과 남을 파괴하는 기이한 일탈의 쾌락에 젖어있다.

몰수당한 인생의 폐허에서 연민어린 순간을 만난 행려 장면의 일부가 빛나기는 커녕 오히려 전체구성을 더 혼란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이유가 이거다.

은근한 작위 그러면서 중구난방인 관점. 클리셰가 된 폭주족들의 대답, "뭐, 재밌잖아요" 투의 파편적이고 냉소적인 어조로 알 수있는 세계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전히 진지한 물음의 자세와 지혜로운 물음의 방식이다.

한국주류사회에 던지는 야심차고 불경한 시도에서 죄의식도, 감동도, 질투도 느끼지 못한게 난 아쉽다. 김정룡<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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