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국어연구 실마리 釋讀口決 자료 잇따라 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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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인 고려시대에 우리말은 어떻게 표기되었을까. 그 이전에도 우리 말을 표기하는 수단이 있었다.

바로 한문의 좌우행간에 토 (吐) 를 달아 우리말로 새겨 읽는 석독구결 (釋讀口訣) 이란게 있었다.

신라 이두가 한자음을 직접 빌어 토를 단 것이었다면 석독구결은 한자를 생략한 약체자 (略體字) 로 독자적인 토를 만들어 사용한 것.

하지만 이 석독구결의 자료가 빈약해 고려시대의 언어현상에 대해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 86년 서울대 안병희 교수가 찾아낸 '석화엄교분기 (釋華嚴敎分記)' 에 중국어로 실린 두 줄의 문장과 73년에 발굴된 13세기 자료인 '구역인왕경 (舊譯仁王經)' 속의 몇개의 단어가 고작이었다.

그외에 '고려왕조실록' 의 몇몇 단어나 고려때 남송사람인 손목 (孫穆) 이 궁궐제도.문물.방언 등을 기록한 '계림유사 (鷄林類事)' 에 하늘.날 (日).월.구름.바람.눈 등 우리말 단어가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돼 전하는 것 정도였다.

이같은 빈약한 자료로 어려움을 겪던 고려시대 국어연구에 결정적인 문헌들이 연이어 발굴돼 학계가 반기고 있다.

12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대방광불화엄경소 (大方廣佛華嚴經疏)' 권35 (개인 소장) 와 13세기 것으로 보이는 '금광명경 (金光明經) ' 권3 (대구 가야병원 내과부장 김병구씨 소장) , 그리고 '유가사지론 (瑜伽師地論)' 권20 (단국대 남풍현 교수 소장) ,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 권14 (개인소장)가 그것. 목판본인 이들 자료가 고려시대 국어연구에 중요성을 갖는 것은 단어나 동사, 어미 수준에 머물렀던 기존의 자료와 달리 완성된 우리말 문장으로 기록돼 있어 당시 언어사실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자료라는 점이다.

특히 '대방광불화엄경소' 등의 석독구결 자료들은 기존의 알려진 자료들보다 1세기가 앞설 뿐 아니라 일연 (一然) 의 '삼국유사' 에 실려있는 향가의 기록연대보다 앞서거나 같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어서 고려시대의 언어현상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자료이다.

실제로 당시 향가의 표기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광명경' 의 경우 몽고 침입과 같은 국난의 시기에 임금이 팔관회.연등회 등 법회를 열 때 사용하는 등 호국불교의 상징으로 사용되던 것으로 당시 승려들이 무엇을 어떻게 읽고 공부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주로 경서 (經書) 를 읽기 위해 사용된 석독구결이 속속 발굴됨으로써 한글 창제 이전의 국어에 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관련 학자들은 평가한다.

석독구결 연구의 기초를 닦은 남풍현교수는 "지금까지 국어연구가 15세기 한글창제 이전으로 거슬러가지 못했다" 며 "이같은 자료들의 출현으로 국어연구는 최소한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고 설명한다.

이외에 원효의 강의를 우리말로 받아적었다는 기록도 전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나온 자료중 '대방광불화엄경소' 와 '금광명경' 은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남권희 교수가 발굴.제공한 것을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정재영박사가 연구해 공개한 것. 현재 구결학회가 분석중인 이 자료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8월말 창간되는 '문헌과 해설' 에 실릴 예정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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