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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중수부 폐지론 흘러나오자 "무력화 음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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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 일각에서 대검 중앙수사부의 기능을 사실상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검찰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14일 청와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가칭 '고위 공직자 비리조사처'(공비처)를 신설해 지금까지 중수부가 맡아왔던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를 전담시킬 방침이다. 정부 일각에선 공비처가 대통령 친인척과 국회의원, 판사, 검사, 국가정보원 간부 등의 비리 수사를 맡고, 필요할 경우 공소 제기를 위해 특별검사를 국회에 요청하는 조항을 부패방지법 개정안에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대검 중수부의 직접 수사를 금지하고 일선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지도하는 기능만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명목상 중수부를 유지하면서 현재 수사기능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르면 15일 법무부.감사원.부패방지위원회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실무 협의회를 연 뒤 23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관련법 개정안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관계기관 협의회에서는 공비처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문제 등 주요 쟁점에 대한 실무차원의 결론을 보고하고 노 대통령의 지침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송광수 검찰총장은 14일 "중수부 폐지 주장은 검찰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며 정부의 중수부 폐지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했다. 송 총장은 이날 수도권지역 검찰청에 새로 부임한 중견간부의 전입 신고식에서 "(그 논의가) 검찰권 행사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검찰의 권한 남용에 대한 제도적 규제는 수용하겠지만 검찰 수사에 피해를 본 사람이 검찰의 권한 약화를 노린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만일 중수부 수사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면 먼저 저의 목을 치겠다"고 말했다.

송 총장은 "중수부는 지난해 각고의 노력을 해 국민의 여망에 보답하기도 했다"며 "검찰의 운명을 걸고 국민에게 내놓을 사건은 중수부가 손을 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의 운명을 걸어야 할 사건에는 총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해 중수부 폐지 움직임이 가시화될 경우 항의 표시로 총장직에서 물러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송 총장은 "대선자금 수사는 지검 특수부로서는 엄청나게 어려운 사건이다. 압박 등 구체적인 얘기를 못하겠지만 지검 특수부라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총장은 이어 이날 오후 정동민 대검 공보관을 통해 "중수부 폐지에 대한 논의의 실체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있다면 부적절한 것"이라면서 "'목을 치겠다'는 의미는 총장직에서 사퇴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려는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검의 한 검사는 "대선자금 수사 이후 정치권이 검찰을 통제하고픈 유혹을 받아 중수부를 없애려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또 일부에서는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의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공직자 비리조사처를 신설하려다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던 점을 들어 "옥상옥(屋上屋)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정규 청와대 민정수석은 "청와대에서는 대검 중수부 폐지와 관련해 어떤 것도 검토한 적이 없다"며 "앞으로도 청와대의 입장 정리 같은 것은 일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대검 중수부 폐지 문제는 법무부에서 논의된 사안으로 알고 있으며, 설사 공비처가 신설돼도 경제사범 수사 등 중수부가 할 역할은 따로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측은 "중수부 폐지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명했다.

박재현.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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