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10승 스토리 … 본사 이태일기자 단독 전화통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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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찬호가 10승을 거둔 순간 94년 그와 함께 낯설고 물선 미국땅을 밟았을 때가 생각났다.

텔레파시가 통한 때문일까. 경기가 끝나자마자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I did it. (난 해냈어)" 박찬호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이젠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자연스런 탓일까. 그는 10승의 감격을 영어로 짧게 말했다.

자신감에 넘친 마운드에서의 모습과 달리 수화기 건너편의 그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반응은 어때요?" 그는 국내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물었다.

자신의 10승이 최근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얼마나 시원한 청량제가 되는지 모르는 듯했다.

"요즘은 프레셔 (pressure.부담)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요. " 박찬호는 가장 힘든 것이 호성적에 따른 기대감과 심리적인 부담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구위에는 자신이 있지만 심리적인 압박이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연승을 할수록 그 부담은 커지고 '다음은 또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나' 하는 막연한 상실감에 빠져들기도 한다는 것. "우리, 마이너 있을 때 생각나요?" 그는 갑자기 화제를 94년 마이너리그에서 필자와 함께 고생하던 시절로 돌렸다.

당시 박은 샌 안토니오 미션스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메이저리그 승격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고 있을 때였다.

자신은 늘 그때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버스를 타고 6시간씩 이동하던 그 시절이라고 했다.

10승의 감격과 맞물려 그때의 고생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분명했다.

"미안해요, 꼭 완투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 다시 평정을 찾은 박은 "오늘만은 꼭 완투승을 거둬 10승을 멋지게 장식하려 했다" 며 오히려 완투승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만큼 그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엑서사이즈 (exercise.체조) 많이 하라고 하세요. " 박은 차명주 (롯데).홍원기 (한화) 등 청소년대표시절 같이 뛰었던 동기들에게 꾸준한 체력단련만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준다고 강조했다.

그의 오늘은 하루도 거르지 않은 자신과의 싸움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메이저리그 10승은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과 자기관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 .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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