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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덕에 시장 커지면 좋죠”

중앙일보

입력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08년 새로텍의 텃밭인 외장형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매출액이 200억 원에 못 미치는 중소기업인 새로텍으로선 벅찬 상대를 만났다. 현재 1위지만 공룡들의 공세에 밀려 상처를 입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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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새로텍 사장이 회로등을 설계하는 제품 개발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 통신 부품회사로 출발한 레인콤은 2000년 ‘아이리버’라는 브랜드로 MP3 플레이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레인콤은 여러 종류의 압축 파일을 쓸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을 내세워 세계 시장 1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미국 애플이 ‘아이팟(iPod)’을 내놓으면서 시장 판도가 달라졌다.

국내 외장형 하드 디스크 1위 새로텍

게다가 삼성전자도 경쟁 대열에 가세한 까닭에 이들과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던 레인콤은 큰 타격을 입고 PMP를 비롯한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 ‘아이나비’ 브랜드로 유명한 팅크웨어는 10여 년 전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에 뛰어들어 드라이브 혁명을 일으켰다. 국내 휴대용 내비게이션 판매대수가 100만 넘게 팔리는 등 인기를 모으자 삼성, LG, SK 등 대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 가운데 현재 SK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팅크웨어는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 1647억 원을 올려 2007년 전체 매출을 뛰어 넘었다.

국내 외장형 하드 시장도 MP3 플레이어·내비게이션 시장과 비슷한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200억 원가량을 올린 새로텍이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거대 공룡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새로텍은 레인콤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팅크웨어처럼 굳건히 버틸까?

현재 국내 외장 하드 시장의 연간 판매량은 150만 대 정도다. 금액으론 1500억 원 안팎이다. 대기업이 뛰어들긴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이다. 하지만 고화질 디지털카메라나 휴대용 캠코더가 널리 보급되면서 넉넉한 저장 장치 수요가 늘어 용량이 100기가바이트(GB)가 넘는 외장형 하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IDC는 지난해 4400만 대인 세계 외장형 하드 판매량이 2010년엔 1억 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관심을 갖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LG전자 관계자는 “외장형 하드는 PC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수익성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는 내장형 하드를 만드는 씨게이트, 웨스턴 디지털, 후지쓰 등 글로벌 기업도 대부분 들어와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PC 등에 들어가는 하드를 만드는 대기업이 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외장형 하드도 만들기 때문에 중소기업 영역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에서는 플래시메모리를 만드는 메모리사업부와 내·외장형 하드를 생산하는 스토리지사업부가 경쟁 관계”라며 “삼성의 사업 확장으로 외장형 하드 시장이 더욱 커지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장형 하드의 핵심 부품인 하드를 만들지 않는 새로텍 입장에서는 특히 삼성전자의 시장 진입이 그리 달갑지 않다. LG전자는 LG 브랜드만 붙여 팔기 때문에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지만 삼성전자는 핵심 부품을 만들 뿐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와 마케팅 능력도 뛰어나다. LG전자와 큐닉스컴퓨터에서 일한 새로텍의 박상인(57) 사장은 “삼성전자가 두렵긴 하지만 외환위기 때나 글로벌 기업이 국내에 진출해 경쟁사가 하나 둘 사라질 때도 꾸준히 성장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이어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별로 크지 않은 시장이라 좀 해보다가 접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1993년 창업 후 목을 메고 일해왔다”고 덧붙였다. 고려대와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박 사장은 고집스럽게 외장형 하드 사업에 매달려왔다. 지난 몇 년 사이 다양한 정보기술(IT) 제품이 쏟아지자 회사 안팎에서 MP3 플레이어가 대세다,

돈이 되는 PMP를 해라, DMB와 내비게이션은 필수다 등등 말이 많았지만 한 우물만 팠다.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사업만 한다’는 지론에서였다. 박 사장은 또 많은 경쟁사가 원가를 줄이려고 중국에서 제품을 만들거나 저가 중국제를 수입할 때 품질과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생산을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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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텍은 특히 삼성전자가 뛰어들기 전까지 국내 유일의 외장형 하드 생산업체이자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는 기업이었다. 이런 노력과 고집 덕에 삼성전자 측에서 추정한 새로텍의 국내 외장 하드 시장 점유율이 46%에 이른다.

박 사장은 “외장 하드는 발 빠른 의사 결정으로 고객의 요구를 즉각 반영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유리한 사업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새로텍은 외장 하드 업계에서 가장 많은 제품군을 갖고 있다.

두세 개 모델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노리는 대기업과 달리 ‘위즈플랫, 큐티, 하드박스’ 등 브랜드와 종류가 다양하다. 지난해에만 53종의 외장형 하드 모델을 시장에 내놨다.

여성용 IT 제품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을 비웃듯 여성 취향의 디자인으로 꾸민 외장 하드 ‘플로라’로 좋은 반응을 얻는 등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제품도 경쟁사보다 빨리 내놓고 있다.

프린터포트, USB1.0, USB 2.0 등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등장할 때마다 가장 먼저 제품을 출시하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박 사장은 요즘 관련 업계의 새로운 화두인 외장형 저장 장치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 스토리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관련 다각화다. 그는 “IT 분야는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기 때문에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며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끊임없이 차별화를 꾀하는 게 1위를 지키는 비결”이라며 사람 좋게 웃었다.

숫자로 본 새로텍

53명 지난해 53명의 새로텍 직원이 53종의 외장형 하드디스크 모델을 시장에 53만 대 공급했다.

1억 8800만 기가바이트 지난해 새로텍이 시장에 내놓은 외장형 하드디스크의 총 용량으로 700메가바이트 영화 2억6930만 편 정도를 담을 수 있다.

320만 대 새로텍이 창업 후 16년 동안 판매한 외장형 하드디스크 총수.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75만 대를 팔았다.

글 남승률 기자·사진 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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