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혁일본은왜가능한가]상. 행정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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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 정권에 한가지 개혁을 하기도 힘들다는 고루한 일본에서 무려 6개 국가개혁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일본의 개혁작업이 이처럼 강력히 추진되는데는 하시모토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을 우선 꼽을 수 있지만 '개혁하지 않으면 죽는다' 는 일본인 전체의 자각이 바탕에 깔려있는 까닭이다.

개혁작업중 최난제는 관료주의를 타파하는 행정개혁으로 관료깨기가 성공하면 나머지 개혁들은 손쉬울 것으로 보고 일본은 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국가개혁의 현장과 개혁 전망을 3회에 걸쳐 집중 점검한다.

일본정치의 중심지인 도쿄 (東京) 나가타초 (永田町) 1초메 (丁目) .총리관저의 건너편에 위치한 총리부 건물 3층에는 '행정개혁회의' 라는 간판이 붙은 사무실이 있다.

전문조사원 (27명) 들이 일하는 작업실과 사무국장.차장이 쓰는 조그만 별실들을 합쳐 불과 50평 남짓한 넓이. 비좁은 공간에서 총 41명의 직원이 각종 자료.서류더미에 파묻혀 땀을 흘리고 있다.

이 행정개혁회의 사무국에서는 패전후 50년 이상 '일본주식회사' 를 이끌어온 관료조직을 전면적으로 축소.개편하는 엄청난 작업이 진행중이다.

지난해 11월18일 내걸린 간판은 오는 12월 철거될 예정이다.

중앙부처 (省.廳)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각종 개혁안을 완성해 정치권에 던져놓고 자신들은 사라지는 전형적인 일몰 (日沒) 방식의 회의체다.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가 회장인 개혁회의의 위원진 (15명) 은 부처개편의 이해당사자인 관료와 정치인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대학교수.기업인.언론인등으로만 채워졌다.

관료층과 노조세력, 족 (族) 의원으로 불리는 정치인들의 반발과 로비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투명성' 을 통해 개혁에의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 행개위의 회의결과는 즉시 인터넷 홈페이지 (http://www.kantei.go.jp/)에 공개된다.

부처개편 방향에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관가에서 이 홈페이지는 인기절정이다.

지난 23일 열린 회의에서는 교육.문화.과학기술 행정을 어떻게 분류하느냐가 초점으로 등장했다.

"교육과 과학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가와이 하야오 위원) 는 주장에 이노구치 구니코 (猪口邦子.조치대 교수) 위원은 " '교육성' 과 '과학문화성' 으로 나누는 것이 더 합리적" 이라고 맞섰다.

와타나베 쓰네오 (渡邊恒雄.요미우리신문사 사장) 위원은 " '교육문화성' 과 '과학기술.환경성' 으로 하는 것은 어떠냐" 는 의견을 내놓았다.

회의결과가 공개되자 자신들의 거취가 도마위에 오른 문부성.과학기술청.환경청 관료들은 이 문제가 어떻게 가닥이 잡힐지에 대해 제가끔 추측들을 내놓으며 술렁거리는 모습이었다.

중앙 성.청의 개편은 공무원 수의 대폭 감축을 의미한다.

이는 정치인이 등용되는 장관직 축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무원은 물론 '대신 (장관) 예비군' 으로 불리는 자민당내의 다선의원들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위기는 기회' 라는 금언대로 개혁태풍의 와중에 이익을 챙겨보려다 톡톡히 망신당한 부처도 나왔다.

체신.정보통신 업무를 담당하는 우정성의 이가라시 미치오 (五十嵐三津雄) 차관은 지난 10일 두툼한 관련서류를 들고 부처개편 작업의 실무사령탑인 무토 가분 (武藤嘉文) 총무청장관을 찾아가 담판을 벌였다.

'통산성이 갖고 있는 일부 정보산업 업무를 우정성에 넘겨줘야 정보통신 행정이 활성화된다' 는 요구였다.

그러나 무토 장관은 차갑게 내뱉았다.

"네 멋대로 될 줄 아는가.

우정성이 갖고 있는 우편저금 업무를 대장성에 넘기고 통신분야를 통산성에 몰아줄 수도 있다.

그러면 너희 우정성은 해체된다.

" 현재 22곳에 이르는 일본의 중앙 성.청이 예정대로 오는 2001년 1월1일부터 절반으로 축소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

그러나 개혁의 리더 하시모토 총리는 비장한 태도다.

"일본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누가 총리를 맡더라도 지금의 개혁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 길뿐" 이라고 그는 최근 말했다.

도쿄 = 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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