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의도에서 모처럼 들려온 “내 탓이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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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초선 정태근 의원이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와 여당의 문제점을 아프게 지적하며 질책해 눈길을 끌었다. 통상 여당 초선의원이라면 청와대와 당의 눈치 보느라 뼈있는 발언을 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정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부시장으로 보좌하고 대통령 만들기에 헌신해온 측근이다.

정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정부는 선진국에 비해 의회 존중의 국정운영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정부 여당을 믿어달라고 말하기 전에 국민과 야당을 믿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한나라당 역시 잘못이 매우 많다”고 자성하곤 “고통 분담과 국민 통합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한나라당부터 자기 쇄신과 자기 희생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자세 전환을 보여주는 징표로 지난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낙인찍기를 이제 그만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합리적 좌파 진영과 시민사회에 대한 적극적 포용을 당부하며 “어떤 변화도 불온시하는 극보수 세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 내에서 좀처럼 들어보기 힘든 목소리다.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더욱 내뱉기 힘든 표현들이다. 그동안 여권 내부에서도 대통령과 정부의 밀어붙이기에 대한 비판이 간간이 나왔지만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선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측근 정 의원의 충정 어린 고언을 귀담아듣기 바란다.

야당 쪽에서도 박상천 의원의 열정이 돋보였다. 보통 초선들이 나서는 질의에 민주당 최다선(5선)으로 직접 나서 후배 의원들을 꾸짖었다. 야당의 물리적 대응도 지난 국회 파행의 원인이었다고 지적하며 자성을 촉구했다. 찬성이나 반대 외에 ‘수정’도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라고 당부했다.

서로 남 탓만 하는 정치공방 속에서 내 탓을 외치는 두 의원의 주장은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두 의원의 목소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개혁을 하려면 대통령과 양당 지도부의 생각이 같이 바뀌어야 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두 의원의 목소리를 국민의 질책으로 알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