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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빙하가 녹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초고층 건물이 불타고 호화여객선이 침몰하는 장면은 대재앙 (大災殃) 영화의 전형이다.

최근에는 외계인의 습격으로 무참한 파괴가 일어나는데까지 상상력이 뻗고 있다.

그러나 빙하가 녹아 지구의 도서 (島嶼) 국가나 주요 도시가 물에 잠기는 지경은 아직까지는 상상력 밖에 있다.

빙하가 녹는다는 가상 자체가 매우 어려운 설정 (設定) 이기 때문인 것같다.

단지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워터 월드' 가 지구가 물에 잠긴 미래의 어느 시점을 가상한 영화로 화제를 모은바 있다.

그러나 이 작품조차 액션위주의 오락영화로 전락하는 바람에 '과연 지구는 물에 잠길수 있을까' 에 관한 과학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최근 알래스카 근처의 베링빙하가 녹고 있다는 실증적 근거가 다시 한번 제시됐다.

그린피스 소속 과학자들의 현지 조사결과 면적 5천1백평방㎞의 베링빙하가 지난 1백년동안 1백30평방㎞나 줄었다는 것이다.

더욱 가공할 일은 빙하가 녹는 속도가 점차 빨라져 90년대부터는 그 길이가 1년에 1㎞씩 줄고 있고, 그 결과 지구의 해수면은 1백년 이내에 50~95㎝나 올라간다는 것이다.

북극의 만년설과 빙벽이 바다로 무너져내리는 장관이 보기에는 좋아도 그 다음은 대재앙 바로 그것이다.

이탈리아 환경부는 지금과 같은 속도로 해수면이 올라가면 베네치아는 60년 이내에 영구 수몰될 것이라고 공식발표했다.

남태평양의 통가를 비롯한 도서국가도 국토가 바닷물에 잠기는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올라가는 근본 원인은 지구 온난화설이 정설이다.

지구가 더워지는 것은 석유나 석탄등 화석연료를 태울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등 공해가스가 태양열의 방출을 막는 '온실효과' 때문이라는 것도 정설이다.

그래서 유엔은 92년 기후변화협약을 체결, 이 유해가스의 배출을 줄이자는 국제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바로 며칠전 미국 상원은 미국만 온실가스 배출억제에 앞장선다는 것은 억울 (?

) 하다는 취지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선진국은 2000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기로 양해된지 이미 오랜데도 말이다.

보다 끔찍한 지구적 수재 (水災) 를 영상화하는 예술적 상상력이 동원돼야 정치가 정신을 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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