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여유 없다 … 백화점, 아파트에 매장을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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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반포동 자이아파트 단지. 주공 3단지를 재건축해 3400여 가구의 대단지가 된 이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입주가 시작됐다. 여느 신규 단지처럼 몇몇 아파트 유리창에 ‘커튼 구경하세요’ ‘인테리어 보러 오세요’ 문구가 붙어 있다. 설치된 제품을 직접 보고 고객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구경하는 집’이다.

이런 안내문 사이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합니다’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2층에 있는 231㎡짜리 아파트에 들어서자 소파·식탁·침대 같은 가구는 물론이고 냉장고·벽걸이TV·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일반 가정처럼 진열돼 있다. 주방·욕실 용품에서 탁자에 놓는 장식품까지 없는 게 없다. 인테리어도 새로 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제품은 백화점 매장에 가서 구입하던 것들이다. 백화점이 그런 제품을 신규 아파트로 몽땅 옮겨와 ‘구경하는 집’을 낸 것이다.

◆기다리지 않는다, 찾아간다=백화점이 달라졌다. 고객을 기다리기만 하던 데서 벗어나 찾아 나서고 있다. 경기 불황에다 한정된 상권을 놓고 벌이는 백화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얌전만 떨고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진=현대백화점 제공]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반포자이에 ‘샘플하우스’를 연 것은 지난달 말. 백화점 측은 판매 사원을 상주시키고 진열된 제품에 대한 상담과 판매를 한번에 한다. 방문 고객에게 사은품을 주고, 입주계약서를 가져 오면 ‘자이안’ 멤버십에 가입할 수 있게 한다. 회원에겐 특별 쿠폰북을 보내주고 생활용품 구매 시 깎아 준다. 108동에 입주 예정인 이주영(45·여)씨는 “이사하려면 석 달 정도 남았지만 백화점이 구경하는 집을 열었다고 해 와 봤다”며 “제품을 구입하면 인테리어 업체가 배치를 도와준다고 해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권모(40)씨는 “이사올 생각이 있어 최신 인테리어를 보러 왔다”며 “진열 제품이 비싸긴 하지만 나중에 내 집을 꾸미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반겼다. 신세계는 하반기 입주 예정인 반포 래미안아파트(2444가구)에도 구경하는 집 설치를 검토 중이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도 AID아파트를 재건축한 삼성동 힐스테이트 1단지에 이달 6일 구경하는 집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입주를 시작했는데, 2단지까지 합쳐 2000여 가구가 들어온다. 제품 전시와 함께 홈스타일리스트가 무료로 집안 꾸미기 노하우를 알려준다. 다음 달 입주하는 목동 트라팰리스에서도 가정용품과 전자제품을 팔 계획이다. 이 백화점 박태훈 대리는 “고객이 오기 전에 먼저 찾아가는 전략이다. 호응이 좋아 매출이 늘었다”고 전했다. 현대백화점은 아파트 주부들을 찾아 다니며 집안일까지 도와줄 작정이다. 이 백화점 천호점은 3월부터 매달 세 차례 정도 직원들이 인근 아파트를 찾아가 고장난 문이나 신발장, 샤워기를 고쳐주고 형광등 교체도 한다. 우산 수리나 칼갈이처럼 주부가 하기 어려운 작업도 해결해 준다. 여름철에는 에어컨 냉매 보충이나 필터 교환도 해 줄 예정이다.

◆백화점과 아파트의 궁합=백화점들이 신규 아파트를 집중 공략하는 것은 아파트 주민의 구매력을 보기 때문이다. 구경하는 집을 내는 단지의 경우 백화점과 가까이 있어 회원으로 유치하면 고정 고객이 될 수 있다. 불경기에 기존 상권이 포화된 점도 이유다. 아파트 주민들로서도 백화점이 가까이 있으면 싫을 이유가 없다. 방화동 경인부동산 김은향 사장은 “김포공항에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는데, 인근 아파트 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대형 쇼핑시설이 가까운 아파트를 선호하기 때문에 매매나 전세 거래도 상대적으로 활발하다”고 소개했다.

그 때문에 일부 건설사는 백화점과 공동마케팅을 벌인다. 회현동에 주상복합아파트 ‘쌍용 플래티넘’을 짓는 쌍용건설은 지면 광고에 신세계백화점의 이미지를 삽입했다. 백화점 발레파킹존에 모델하우스를 설치해 하루 300명가량을 끌어들였다. SK건설은 ‘반포 SK뷰’를 홍보하려고 신세계 강남점 2층 명품 매장에 미니 모델하우스를 만들어 부유층 상대 마케팅을 폈다.

신세계 마케팅담당 홍정표 부장은 “기존 상권이 포화하면서 어떻게 새 고객층을 개척할지에 힘을 쏟고 있다”며 “올 한 해 수도권에 쏟아지는 신규 입주물량을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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