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세대 감각적 풍속 엿보기…비디오'로미오와 줄리엣' 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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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신세대는 어느 시대나 존재해왔지만 시간.공간적인 배경에 따라 그 모습은 사뭇 다르다.

특히 세대간의 의식.환경등의 차이가 클수록 신세대의 존재는 기성사회로부터 때론 호기심으로, 때론 비판과 질시의 대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신세대' 는 본모습이 늘 모호하며 상품브랜드 같은 허상의 꼬리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익스피어 고전극을 현대 대도시로 옮겨놓은 '로미오와 줄리엣' (폭스) 은 시대를 뛰어 넘는 보편적인 연애 감정을 세기말의 신세대들에게 그럴듯하게 융합시켜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들게한다.

황량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도시 뒷골목에서 뛰어놀던 젊은이들이 사랑과 우정에 관해 극단적인 몸짓으로 반응하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매력 때문에 한국에서 의외로 흥행에 성공한 신세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은 따라서 비극적인 로맨스라고 줄거리만 단순화해서 보기보다는 세기말의 젊은이들이 갖고있는 가치관과 지향점들을 생각해보면서 볼 필요가 있다.

미국 대도시 상류층 신세대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나열하고 있는 작품이 '클루리스' (CIC) 다.

로스앤젤리스 베벌리힐즈 10대들의 풍속도를 코믹터치로 옮겨놓은 이 작품에선 우선 배꼽티.통굽구두.뉴칼라 선풍 등 전형적인 신세대 패션이 눈에 띈다.

게다가 시종 무선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별 의미없는 수다를 떠는 무뇌아같은 표정들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세대들의 의식구조를 엿 볼 수 있다.

그에 더해 쇼핑 중독증, 특정 상품캐릭터에 대한 맹종, 말초신경 자극적인 시기와 질투 등 후기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신세대들의 소비성향을 다양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클루리스' 와 성격을 달리해 '몰래츠' (CIC)에선 보다 가난하고 비루한 모습의 신세대들이 등장한다.

쇼핑몰에 '쥐들처럼' 하릴없이 나타나 시간을 죽이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몰래츠' 는 자본주의의 소비성만을 추구하는 신세대들의 의식과 판단기준들이 즉흥적이고 지극히 감각적이라는 점을 드러내 준다.

단순한 청소년 시트콤으로 보이기도 하는 '몰래츠' 는 그러나 그들의 언어와 시각으로 그들의 자화상을 펼쳐내 관객들에게 관찰하는 재미를 자아낸다.

'몰래츠' 의 감독 케빈 스미스는 그 자신도 25세의 신세대다.

그는 현대도시의 소비공간을 상징하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에피소드들을 그린 '점원들' 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편 리브 타일러 주연의 '엠파이어 레코드' (드림박스) 는 90년대 10대들의 감성을 지배하는 음악들이 시종 흐르면서 한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6명의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펼치는 음악 천국을 보여준다.

분출하는 감정, 불안정한 심리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반복적인 음악 리듬에만 탐닉해 있는 젊은이들의 감각에 익숙지 않다면 그들의 자극적인 펑크.댄스 음악들이 어른들에게는 물론 편안하게 들리지 않는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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