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화.김중태 장편소설 '나는 새를 위한 악보' '겨울신화' 각각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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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여성뿐 아니라 중년 남성들에도 위기는 있다.

수십년간 기존 사회의 틀안에서 열심히 오늘을 일궈낸 중년들이 이제 사회 변혁과 새로운 가치관에 적응 못하고 하염없이 뒤쳐지고 있다.

처녀적 도저한 자존심과 분홍빛 꿈 접어놓고 주부로서 한 가정 잘 이루고 난 여성이 어느날 문득 잃어버린 자신을 괴로워하듯 요즘 그런 중년 남성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런 위기의 중년 남성을 다룬 중년작가의 장편 2편이 나왔다.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 '거품시대' 등으로 화제를 불렀던 홍상화씨는 최근 장편 '나는 새를 위한 악보' (문학수첩刊) 를 펴냈다.

작중 프롤로그에 "40대 중반 이후 마지못해 살아가야 할 남은 인생을 상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찾아드는 허무감" 이라 썼듯 이 작품은 중년에 찾아든 허무감에 대한 반발의 소산이다.

미국에서 건축가로 성공하여 모든 점에서 부족할 것 없는 주인공 승혁.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도대체 성공한 삶 안에 갇혀지내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원초적 삶의 자유를 속박하는가 하는 생각에 시달리다 마침내 자신의 기득권 모두를 스스로 포기하고 귀국, 전혀 낯선 삶에 자신을 내던진다.

간척 공사장 인부, 갯장어 낚는 어부, 그리고 건달 생활 등 철저하게 자신의 지나온 삶과 다른 생활을 한다.

그리고 술집 작부와 동거도 한다.

에이즈 환자인 그 여자가 자살하자 그도 역시 바다에 몸을 던져 죽는, 비극적 결말로 작품을 끝맺는다.

작가는 중년 이후 모든 것을 팽개치고 순수한 젊음의 마음으로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주인공과 대비해 중진 언론인인 '나' 를 등장시켜 돈 많고 교양 있고 쌓아올린 지위를 지키고 확장시키려 급급하는 중년의 일상적 삶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대하소설 '해적' 에서 주먹세계를 강인한 문체로 속도감 있게 파헤쳐 주목 받았던 작가 김중태씨가 이번에는 '순애보' 같은 애정소설 '겨울신화' (씨앤씨미디어刊) 를 펴냈다.

중년의 나이에 자의반 타의반 직장에서 쫓겨난 주인공 윤조. 학창시절부터 그리고 싶었던 그림에 다시 몰두하는 윤조를 아내는 학대하다 못해 감옥과 다름 없는 요양원에 수용시켜버린다.

요양원을 탈출한 주인공은 작은 섬으로 가 숨어 살며 그곳에서 젊은 음악선생을 만나 순수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주위의 곱지않은 시선에도 불구, 결혼한 둘의 행복도 한순간. 암에 걸린 사실을 숨기고 젊은 아내의 음악회를 헌신껏 도와주던 주인공은 음악회가 열리던 그날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위기의 중년 남성의 탈출과 그 이후를 다룬 두 작품 모두 비극적 결말을 맺고 있다.

순진무구한 젊음으로 다시 새 삶을 찾겠다는 것 자체가 한갖 꿈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숙명처럼. 그리고 꽉 짜인 오늘의 사회 제도와 관계가 중년의 그런 탈출구를 결코 용납할 수 없어 비극적 결말을 맺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 이제 중년 작가들이 동년배들의 아픈 영혼의 위무와 꿈을 위한 '중년 남성 소설' 을 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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