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보기>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씨 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바이올리니스트와 한옥 고가 (古家) .웬지 어색하기만 한 양악기와 한옥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나로 만들어버린 사람이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49.서울종로구운니동) 씨의 집. 그가 태어나자마자 이사와 지금껏 사는 곳이다.

물론 12살 때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오랜 외국생활을 하고 있지만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반가운 곳이 이 집이다.

"정말 50년전에 비해 하나도 안 변했어요. 안방에 놓인 자개농이며 액자.병풍 모두 그대로인 걸요. 해마다 다르게 빌딩숲에 묻혀가는 동네를 보면서 지금까지 집을 지키고 계신 어머니가 더욱 고맙게 느껴집니다.

" 그는 도심속의 청정구역처럼 남아있는 집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조선조 말기에 지어져 한때 운현궁의 일부로 이용되기도 한 이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대청으로 연결돼 있는 특이한 형태. 대청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안방과 김씨가 어릴적 쓰던 방이 있고 맞은 편에는 사랑채가 들어 앉아 있다.

이집에서 한옥의 향취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대청. 천정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흙빛 서까래가 줄줄이 늘어서 시선을 훔친다.

대청 앞뒤엔 유리 미닫이 문이 달려 있어 시야를 훤하게 터준다.

벽에 걸린 오래된 거울과 고서화를 담은 액자들이 고풍스러움을 더해주는데 대청 한쪽에는 자개농 두개가 형제처럼 나란히 섰다.

대청에서 한지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서화.도자기.병풍이 장식돼 있고 보료와 방석, 그리고 빨강.파랑.노랑 비단으로 장식된 삼단짜리 여닫이장이 눈길을 잡아끈다.

무엇보다 이 집은 한여름의 더위에도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필요없을 만큼 시원한 것이 특징. 우리 선조들의 집짓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요요마등 친하게 지내는 음악가들이 한국공연을 가질 때면 어머니가 꼭 집으로 초청해 한국음식을 대접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한국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며 좋아하더군요. " 그의 은근한 자랑이다.

현재 이 집은 지난 77년부터 서울시에 의해 민속자료 제19호로 지정돼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지난 17.18일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 유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마친 김씨는 내년부터는 40년 역사를 지닌 세계 정상급 실내악단인 '보자르 트리오' 의 멤버로 활동할 예정이다.

신용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