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200m 테헤란도 ‘산소탱크’는 못 말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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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9일 새벽(한국시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웨스트햄의 홈구장인 업턴파크 앞.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태울 자가용 한 대가 대기했다. 경기 막판 투입돼 7분간 가볍게 뛴 후 그라운드를 빠져나온 박지성은 곧바로 승용차에 몸을 싣고 런던 히스로 공항을 향해 달렸다. 박지성은 6시간45분간의 비행 끝에 오후 2시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도착했다. 쉴 틈도 없이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2시간을 날아가 오후 5시반 테헤란에 도착했다. 경기를 마친 뒤부터 테헤란 입국장을 빠져나오기까지 15시간이 넘게 걸렸고, 비행기를 탄 시간만 9시간에 육박했다.

축구 대표팀 허정무 감독과 태극전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박지성이 마침내 테헤란에 입성했다.

박지성은 테헤란의 공기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1200m 고지로 평지에 비해 산소가 희박한 이곳에서도 ‘산소 탱크’ 박지성의 폭풍 같은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이란과 한국의 상대 전적은 8승5무8패로 호각이다. 이란 원정에서는 1무2패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박지성에게는 승리의 기억만이 남아 있다.

박지성이 태극 마크를 달고 처음으로 골을 넣은 곳이 바로 테헤란이다. 박지성은 2000년 6월 LG컵 마케도니아와의 경기에서 A매치 6경기 만에 첫 득점을 신고했다. 후반 18분 이천수의 로빙 패스를 받은 그는 주저 없이 왼발슛으로 결승골을 만들어 냈다. 한국은 결승에 올라 이집트마저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박지성은 이란과의 대결에서도 유난히 강했다. 올림픽 대표와 아시안게임 대표를 포함해 박지성은 이란과 모두 여섯 번 격돌해 3승2무1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9년 전 무명이었던 박지성은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해 테헤란을 다시 찾았다. 박지성은 이란에서도 유명 인사다. 한국 취재진과 마주치는 현지인들의 인사는 “살렘”(이란의 일상적 인사말)이 아니라 “박지성”이다. 축구팬 살림(40·회사원)은 “박지성이 출전하는 맨유 경기를 자주 본다. 얼마 전 첼시와의 경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란 기자들이 한국 취재진에 문의하는 것도 십중팔구 박지성에 관한 내용이다. 파스통신의 알리 케자 기자는 “최근 알리 다에이 감독의 인기가 떨어져 이란 대표팀 경기에 관중이 상당히 줄었다. 하지만 11일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는 상대가 박지성이 뛰는 한국이라 평소보다 많은 관중이 올 것”이라고 전했다.

테헤란=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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