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보는 세상] “앗! 큰일 났네, 내 동생이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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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라고? 난 싫어!
파니 졸라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46쪽, 7500원

장난감하고 여동생하고 바꿀까요?
다니엘라 쿨롯 글·그림, 유혜자 옮김, 24쪽, 8500원

내 동생은 못 말려
김종렬 글, 이상권 그림, 아이세움, 92쪽, 6500원

나에겐 네 명의 동생이 있다. 첫째 동생과 터울은 두 살. 막내하고는 열세 살. 그러다 보니 첫째 동생이 태어났을 때의 기억은 완전 백지상태이며, 막내 동생의 출생은 거의 엄마의 마음과도 같은 감격으로 맞이했다. 나는 무엇이든 동생들과 함께했다. 골목대장처럼 동생들을 데리고 다니며 친구 집에 갔고, 학교놀이를 하고, 언덕 너머의 교회에 다녔다. 그래서 이제 부모가 된 동생들과 한자리에 모이면 할 이야기가 많다. ‘넌 그때 왜 그랬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스워.’ ‘그때 까만 개 가 막 쫓아와서 도망가는데 언니가 나타나서….’ ‘그때 엄마가 집에 없어서 밥도 못 먹고 울고 있는데….’ 그렇다. ‘그때’의 형제들은 적어도 너덧 명은 보통이었으며, ‘그때’의 아이들은 언제나 함께 했고, ‘그때’의 우리들은 내 것을 주장하고 살기에는 내 것이라는 소유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다르다. 시대의 변화는 가족의 초상마저 바꾸어버렸다.

그 영향은 어린이책에서도 나타난다. 동생을 이야기로 삼아 나온 책들의 제목만 보아도 그렇다. 동생이 태어난다는 설렘이나, 동생이 생긴 것에 대한 기쁨을 다룬 책은 몇 되지 않는다. 왕자이며 공주였던 내 옆에 다른 더 특별한 존재가 출현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 위기감으로 엮어지고 있다.

알리스는 “동생이라고? 난 싫어!”라고 발버둥친다. ‘모든 게 좋았는데, 지금까지는 말이야. 나한테도 물어봤어야지. 나는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적 없단 말이야!’ 알리스는 동생이 있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떠올린다. 동생이 하도 울어서 밀가루 반죽으로 귀를 틀어막아도 소용없어. 아기가 잠들면 절대 떠들지 못해. 아기들은 우리말도 못 알아들어. 그리고 토할 때도 있어! 마침내 알리스는 엄마. 아빠에게 말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쓰레기통에 버려도 돼요?” 물론 야단만 맞고, 동생은 태어났다. 미운 감정, 싫은 마음을 감춘 채 알리스는 동생을 맞이한다. 그리고 동생은 하루하루 커 간다.

이제 동생은 어느덧 커서 함께 뛰어놀 대상이 됐다. 베니의 여동생이 그렇다. 『장난감하고 여동생하고 바꿀까요?』의 주인공 베니는 엄마가 외출하는 날에는 꼼짝없이 동생의 놀이상대가 되어야 한다. 오늘이 바로 그렇다. 동생보기에 지친 베니는 생각한다. ‘동생을 리모컨으로 조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가 원격조종 우주선이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여동생과 초콜릿과 막대사탕 세 개를 한 묶음으로 해서 줄 테니 친구의 원격조종 우주선과 바꾸자고! 평소에 동생을 갖고 싶어 했던 친구는 잠시 고민하더니 동의한다. 귀찮던 동생은 이제 친구네로 갔고, 원격조종 우주선은 베니의 손안에 있다. 베니는 이제 자유다! 그런데 그 자유와 홀가분함은 오래 가지 못한다. 베니는 몇 시간 되지 못해 친구에게 달려간다. 동생을 돌려 달라고. 그 다음 이야기는? 동생이 있는 아이들은 알 것이다.

영철이도 알고 있다. 『내 동생은 못 말려』의 영철이 여동생 영희는 공주나 동화 속의 소녀가 아니다. 영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바퀴벌레를 때려잡는 무적소녀다.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며, 천둥 ·번개치며 비가 쏟아지는 밤에 귀신장난을 하는 엽기 동생이다. 그러나 동생은 동생일 뿐! 오빠보다 용감한 동생은 자기밖에 모르고, 오빠를 졸졸 따라다닌다. 무엇이든 오빠와 함께하려고 한다. 아, 힘들어. 동생이 귀찮고, 동생이 싫다. 오빠는 동생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하늘은 비를 내려 천륜의 진리를 가르쳐준다. 빗물 덕분에 지독한 감기에 걸린 오빠. 끙끙 앓는 오빠 옆에서 간호한다고 들락거리던 영희마저 감기에 걸린다. 그때, 엄마가 오빠에게 말한다. “어쩜 영희 하는 짓이 그렇게 너를 닮았니? 넌 기억 안 날 거야. 네가 영희만할 때, 엄마 아프다고 약을 만들어 줬거든.” 그러면서 엄마는 휴지에 싼 사탕을 내민다. 영희가 오빠 준다고 만든 약이라며. 순간, 오빠는 어린 동생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동생은 자기의 초상이며, 자기가 걸어온 만큼 걷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말한다. ‘맏이’는 하늘이 내려주는 자리라고. 그래서인지 맏이들은 통과의례처럼 ‘동생 맞이하기’를 어린 나이에 아무 준비도 없이, 남자 동생이든 여자 동생이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쳐야 한다. 게다가 자기에게 향하던 주변 사람의 눈길과 마음, 웃음소리는 단번에 동생으로 향한다. 그 소외와 박탈감은 어린 나이에 충격이며, 고통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생이 싫어!’ 하고 외치지만 동생은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없다. 대신 이것 하나만 알고 있으면 이 세상의 언니·오빠·형·누나들의 삶이 조금은 편안해질 것이다. 동생이 막무가내라고? 그것은 동생이 언니·오빠가 억지 부리며 발버둥치는 것을 봤다는 것이고, 동생이 울고불고 한다고? 그것은 동생이 형·누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의미다. 맏이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우리는 동생들에게 ‘만만한 부모’이기 때문이다.

노경실(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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