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북 + 와이브로 + 스마트폰 무장 … 이젠 ‘디지털 기마족’이 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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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의 북적대는 한 커피숍. 광고홍보를 전공하는 대학생 김나희(23)씨가 얼마 전 친구 5명과 공모전 응모에 관해 의논하고 있었다. 이들 앞엔 무선인터넷에 연결된 넷북이 켜져 있다. 웹상에서 자료를 검색해 보며 광고물 아이디어를 짠다. 김씨는 “어디서든 필요한 때 인터넷에 접속해야 직성이 풀린다. 한번 (무선인터넷을) 써보면 없인 못 산다”며 웃었다. 무선인터넷인 와이브로와 와이파이 서비스가 확산되고 넷북·스마트폰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옮겨 다니며 일하고 즐기는 세상이 국내에도 활짝 열리고 있다.

#무선 단말기 진화로 확산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2003년 제창한 ‘디지털 노마드(유목민)’의 개념이 2009년 인터넷 강국인 한국 땅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당시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이란 저서에서 ‘21세기는 정보기술(IT) 장비를 갖추고 지구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려면 유·무선 초고속 인터넷망이 세상 곳곳을 거미줄처럼 뒤덮고, 이 네트워크에 휴대전화·노트북·PDA 같은 디지털 기기를 쉽사리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노트북은 무거웠고 무선인터넷 지역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인터넷 인프라가 잘돼 있다는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부터 국내 인터넷 환경에 획기적 변화가 일었다. 우선 ‘미니 노트북’인 넷북 시장이 급성장했다. 국내 가격비교사이트 겸 쇼핑몰인 다나와에 따르면 지난해 6월에만 해도 이 사이트를 통해 팔린 노트북 4600여 대 중 넷북은 15대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10월 한 달 1000대를 넘어섰다. 올 들어 1월엔 1300대 넘게 팔렸다. 노트북 4대당 한 대꼴이었다.

넷북 인기는 무선인터넷 접속 가능 지역이 넓어진 덕을 많이 봤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부터 IPTV와 무선인터넷 ‘와이브로’를 방송·통신 융합의 대표적 서비스로 키우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1일 내놓은 ‘방송·통신망 중장기 발전 계획’에서도 “내년 말까지 국민 절반 이상이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발맞춰 KT는 올해 와이브로망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SK텔레콤은 무선인터넷 서비스인 ‘T로그인’의 가능 지역을 서울 등 44개 도시에서 84개로 늘리기로 했다.

#일과 공부를 무선인터넷으로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 손잡아 지난해 11월 스마트폰 ‘T옴니아’를 출시했다. T옴니아는 사실상 국내 첫 스마트폰이다. 휴대전화로 전문적인 문서 작업과 e-메일 송수신을 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PC처럼 쓸 수도 있다. 넷북과 함께 디지털 노마드 족들의 필수품으로 통한다. 100만원 안팎의 비싼 제품인데도 4만 대 이상 팔려나갔다.


SK텔레콤이 지난해 말 출시한 캐나다 림의 ‘블랙베리’도 한 달 만에 140개 기업이 도입하기로 했다. 그래서 올해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스마트폰의 각축장이 될 걸로 업계는 전망한다.

KTF는 상반기에 애플 아이폰을 내놓는다. LG텔레콤은 ‘오즈’용 옴니아폰 출시를 앞뒀다. SK텔레콤도 HTC의 ‘터치다이아몬드’나 소니에릭슨의 ‘엑스페리아’, 노키아의 ‘6210’을 줄줄이 출시할 예정이다.

화면 크기가 넷북의 절반(5인치)인 모바일 인터넷 기기(MID) 시장도 올해 선전이 예상된다. 지난해 11~12월 ‘한국형 MID’라 할 만한 제품들이 속속 출시된 덕분이다. 민트패스의 ‘민트패드’, 레인콤의 ‘웨이브폰’, TG삼보의 ‘루온 모빗’ 등이다. 이들은 작고 가벼워 휴대하면서 인터넷에 접속하기 좋다. 민트패드의 경우 무선인터넷 접속 후 화면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곧바로 인터넷상의 블로그에 정보가 입력된다. 다른 네티즌의 블로그에 댓글을 달거나 사진을 올릴 수도 있다. ‘움직이는 인터넷’으로 일과 공부·친교를 두루 할 수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의 신희정 과장은 “회사 휴게실이나 인근 카페에서 무선인터넷으로 업무를 보는 이들이 몇 달 새 확 늘었다”고 전했다. 스스로도 출퇴근 버스 안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보려고 지난달 넷북을 장만했다. 입시학원 강사인 이은별(30)씨는 휴대전화·전자사전과 함께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를 늘 갖고 다닌다. “궁금한 게 있거나 영화표 예매, 노래 내려받기를 할 때 휴대전화로 무선인터넷에 접속한다”고 했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재임 시절 새 반도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플래시메모리에 모든 정보를 담고 옮겨 다니는 ‘신(新)유목민’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그런 시대가 막 열리고 있다.

이나리·김창우·임현욱 기자

◆넷북(Net-book)=화면 크기가 10인치 안팎에 불과한 신개념 미니 노트북. 노트북의 기본 기능을 다 하면서 값은 수십만원대로 저렴하다.

◆휴대인터넷기기(MID·Mobile Internet Device)=동영상 재생 등에 특화된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와 저가형 노트북 PC인 넷북의 중간 형태인 웹서핑용 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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