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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어로, 한 사람에게 속삭이듯 다가서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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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쇼트트랙 경기에서 곡선 코스를 ‘경영’하는 주자의 능력을 보면 승부를 미리 가늠할 수 있다. 어떻게 안으로 파고드느냐에 따라, 즉 어떤 준비를 했느냐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도 비슷하다.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했느냐에 따라 회복기 결과가 달라진다. 그러나 막상 과감한 투자를 결정하기엔 변수가 너무 복잡하다. 마침 ‘위기의 시대, 위기의 브랜드’ 콘퍼런스가 컨설팅업체 WK마케팅그룹 주최로 4~5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에서 열렸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 이해선 CJ홈쇼핑 대표, 조서환 KTF 부사장 등 내로라하는 ‘마케팅 고수’들로부터 불황을 헤쳐 나가는 비책(秘策)을 들어봤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기업에 불황기 투자는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디자인 분야 투자라면 더욱 그렇다. ‘디자인 경영 전도사’로 유명한 김영세(59) 이노디자인 사장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투자를 하려면) 당연히 돈은 들지요. 그런데 ‘공연히 돈만 더 쓴다’는 것은 명백한 오해입니다. 아이리버의 ‘레인콤’은 이노디자인과 만난 덕에 60억원 하던 매출을 한때 4500억원으로 끌어올린 적이 있어요. 삼성전자 애니콜 ‘SGH C-100’은 1조원어치나 팔렸어요. 디자인에 투자해 10배 넘는 수익을 거둔 회사가 숱하게 많습니다.”

김 사장은 “디자인은 뷰티 콘테스트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만들기 쉽고 쓰기 편하면서도 한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디자인관(觀)이다. 쓸데없이 금테 두르고 두세 겹 색깔을 입히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 홈플러스와 제휴해 주방용품·욕실용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홈플러스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이노디자인이 디자인했는데, 제품 값이 결코 비싸지 않아요. 깔끔한 디자인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만큼 기업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불황기에 히트상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 질문에 대한 김 사장의 대답은 한결같다. 디자인을 실용적으로 하고 광고도 차별화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사용자 한 사람’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엄밀히 따져 제품의 최종 사용자는 한 명”이라며 “그 한 사람을 만족시켜야 ‘나도 같은 생각인데’라고 공감하는 사람이 나오고 이들이 수백만, 수천만 명으로 확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라네즈의 여성용 콤팩트 ‘슬라이딩 팩트’를 실례로 들었다. “2004년 아모레퍼시픽에서 여성용 콤팩트를 디자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아내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러면 나를 위한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겁니다. 기존 콤팩트는 폴더 방식이라 거울 보기가 불편하다는 거였어요. 콤팩트를 휴대전화처럼 밀어서 여는 방식으로 바꾸고 거울을 아예 케이스 표면에 붙여 문제를 해결했지요. 오로지 한 사람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태어난 제품인데 지금까지 수백만 개가 팔렸습니다.”

이해선 CJ홈쇼핑 대표

세탁세제 ‘비트’와 즉석밥 ‘햇반’을 만든 마케팅의 귀재. ‘설화수’를 연 5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특급 화장품 브랜드로 끌어올린 미다스의 손. 지난달 취임한 이해선(54) CJ홈쇼핑 대표를 일컫는 말이다. 빙그레 상무, 아모레퍼시픽 부사장을 거쳐 13년 만에 ‘친정’인 CJ로 돌아온 이 대표는 3년째 매출 정체에 빠진 홈쇼핑을 구원하라는 특명을 맡았다.

경기 침체가 그에게는 기회로 비춰진 것일까. 이 대표는 두 개의 ‘10’이라는 명쾌한 슬로건을 제시했다. 5년 안에 연 10%씩 성장하고 10%대 수익률을 내는 회사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생각의 대전환이 필수적이라는 게 그의 주문이다. 이 대표는 “고객 불만이 쌓인다고, 경기가 불황이라고 소극적 대책만 내놓으면 회사는 게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고 단정지었다.

이 대표는 요즘 ‘도시락 연구’에 빠져 있다. 2만5000원 하는 신라호텔 도시락도 주문해 보고 이마트 수지점에서 처음 판매했다는 도시락 상품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TV 홈쇼핑 상품으로 도시락을 내놓을 구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적 항공기 타본 사람은 하나같이 ‘비빔밥이 훌륭했다’고 칭찬합니다. 이것을 ‘사무실’로 확장할 수 없을까 궁리 중이에요. 기업에서는 회의를 하느라 점심 도시락을 주문하는 일이 잦잖아요.”

시중에 나와 있는 도시락은 품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렇다고 호텔 도시락을 주문하자니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 대표는 이 틈새를 TV 홈쇼핑으로 공략할 수 있겠다는 계산을 했다. 이 대표는 “CJ제일제당이나 이마트도 비슷한 기획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CJ홈쇼핑이 CJ나 이마트와 경쟁을 하는 셈”이라며 엷게 웃었다.
이 대표는 불황기의 가장 큰 특징은 “옥석이 구분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황 때는 적당히 만들어도 판매 목표를 채울 수 있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 소비자에게 어필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여기서 승자가 되는 지름길은 “고객의 아이디어를 충실히 모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 애플 매장엔 파란 옷을 입은 전문 조사요원 14명이 근무합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고객 불만을 조용히 듣고 메모하는 것뿐입니다. 애플은 여기에서 접수한 고객 불만들을 모아 이듬해 신제품에 반영합니다. 히트상품은 연구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이 만들어 주는 거죠. ‘고객을 안다고 하는’ 회사는 실패합니다. ‘고객을 알려고 하는’ 회사가 결국 이기게 돼 있어요.”

조서환 KTF 부사장
‘기회는 위기 속에 있다’ ‘위대한 브랜드는 불황 속에서 나온다’…. 불황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다. 조서환(52) KTF 부사장도 “한정된 예산, 심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예산을 가지고 히트상품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 부사장은 “이럴 때는 무엇보다 짧고 명쾌한 메시지로 승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애경산업 근무 시절인 1998년 내놓은 ‘2080치약’ 사례를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치약은 전형적인 성숙 시장이다. 당시 치약 브랜드 108개가 혼전 중이었다. 게다가 외환위기 와중이어서 시장은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다. 당시 1등 브랜드는 ‘페리오’(LG생활건강)였다. 여기서 조 부사장은 1등의 ‘빈틈’을 발견했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1, 2등 브랜드가 치주염 예방, 구취 제거, 미백 효과 등 토털 기능을 강조하는 겁니다. 15초 광고가 나가는 동안 이런 기능을 모두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내부에서도 비슷한 광고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조 부사장은 생각이 달랐다. 경쟁사 제품을 베껴 성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놓은 제품이 2080치약이다. 15초 광고시간 중 13초 동안 제품만 비췄다. 그리고 ‘20개의 건강한 치아를 80세까지’라는 광고 카피를 내보냈다. 제품 브랜드도, 광고 마케팅도 단순 명쾌했다. 이런 전략 덕분이었을까, 2080치약은 출시 1년 만에 1위 브랜드가 됐고 지금도 23%의 시장 점유율을 지키고 있다.

그는 2001년 KTF로 옮긴 뒤 시장을 쪼개는 전략을 구사했다. SK텔레콤의 011 브랜드가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보였던 탓이다. 조 부사장은 “이럴 때는 전체가 아니라 시장을 쪼개서 접근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청소년 시장이 성장하는 것에 주목해 여성 전용 브랜드인 ‘드라마’와 1318세대 맞춤 브랜드인 ‘비기’를 내놓았다. 역시 크게 히트했다. 2007년엔 3세대 휴대전화 서비스 브랜드 ‘쇼’를 통해 SK텔레콤을 크게 위협하기도 했다.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 전장(戰場)을 바꾸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불황을 극복하는 리더십에 대해 그는 “철저하게 낙관론자가 되는 게 먼저”라고 대답했다. 알려진 대로 조 부사장은 군 복무 시절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 어렵게 구한 직장이 애경산업이었고 이 회사에서 활약해 로슈·다이알 등 다국적 기업에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안 된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임원이 돼서 경영 목표치를 받으면 ‘30% 더 하겠다’고 대답했어요. ‘할 수 있다’고 말해야 기회의 문이 열립니다.”

이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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