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 늘리고 방학 때도 수업 … 배움 지름길 없어 더 열심히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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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교육 개혁 차원에서 ‘선생님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5일 ‘2009 기술·오락·디자인 회의’(TED) 연설에서 『워크 하드, 비 나이스(Work Hard, Be Nice)』란 책을 필독서로 추천했다. 워싱턴 포스트(WP) 교육전문기자 제이 매튜스가 최근 펴낸 이 책은 미국 선생님 마이크 파인버그(39)와 데이브 레빈(37)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은 ‘지식은 힘 프로그램’(KIPP·the Knowledge Is Power Program)을 개발한 교육자다. ‘워크 하드, 비 나이스’는 KIPP 슬로건이다. ‘학생은 품행을 단정히 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교육자는 학생을 존중하며 열심히 가르치자’는 뜻이 담겨 있다.

명문 펜실베이니아대 출신의 파인버그와 예일대 출신 레빈은 1992년 휴스턴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5학년 반을 맡았으나 금세 좌절감을 느꼈다. 대다수 학생 수준이 3학년 정도인 데다 수업 분위기도 산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학교 당국이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이듬해 두 사람은 밤을 새워 KIPP 골간을 만들었다.

“배움엔 지름길이 없다.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교육 목표를 정한 두 사람은 학업 성취 기준을 높이 정하고, 구체적 학습 방법을 창안했다. 우선 평일 수업 시간을 대폭 늘리고, 토요일도 격주로 가르치고, 여름방학 때도 수업하는 등 선생님이 더욱 헌신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학생들이 숙제를 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기면 새벽 등 언제라도 선생님에게 전화 걸어도 좋다는 원칙도 세웠다.

학생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율을 정했다. 수업 시간 잡담을 철저히 금지하며, 한 학생이라도 한눈팔면 그가 집중할 때까지 수업을 중단하고,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은 교실 문 밖에 세워 놓기로 했다. 파인버그는 한 여학생이 집에서 TV를 보다가 숙제를 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 그 집에서 TV를 떼어내기도 했다. 대신 학생에 대한 인센티브도 마련했다. 공부와 숙제를 잘하면 학교에서 책과 티셔츠 등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전표’를 매주 상으로 주는 것이다.

두 사람은 94년 휴스턴 학교의 5학년을 상대로 KIPP 기법을 처음 적용했다. 1년 만에 학생 중 3분의 2가 우등생 과정 시험에 합격했다. 이듬해는 각자 휴스턴(파인골드)과 뉴욕 사우스 브롱스(레빈)에 KIPP 학교를 설립했다. 거기서도 성공을 거두자 KIPP 네트워크에 편입하겠다는 학교가 줄을 이었다. 현재 KIPP에는 66개 교가 소속돼 있다. 워싱턴DC와 19개 주에서 1만6000여 명의 초·중·고교생이 이들 학교에 다닌다. 학생의 약 95%는 흑인과 히스패닉(중남미계), 80% 이상은 저소득층 가정 자녀다. 미 고교생의 평균 졸업률은 70%밖에 되지 않지만, KIPP 학교 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80%가 넘는다. KIPP 학교는 ‘차터 스쿨(Charter School)’이 대부분이다. 공립학교이면서도 민간 기부금을 받을 수 있고, 교과과정과 학교 운영에서 자율성을 부여받은 일종의 대안학교다.

KIPP는 특히 ‘선생님 개혁’에 중점을 두고 있다. 명문 UC버클리대 경영대학원에 KIPP 교장 교육프로그램 과정을 운영하면서 좋은 교장 후보를 양성하고 있다. KIPP 학교 교장에겐 교사를 뽑고 해고할 권한이 있다. 훌륭한 교사 물색과 엉터리 교사 퇴출은 가장 중요한 업무다.

두 사람은 최근 WP 기고에서 “KIPP에선 학생의 학업 성취와 교육 성과를 교장·교사의 채용·해고·보상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미국의 공립학교가 교육 결과에 책임지지 못하면 세계 수준의 교육을 제공한다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올해 하버드대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선정한 미국의 베스트 지도자 24인에 포함됐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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