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낭소리’ 대박 속에 주인공 노부부는 곤욕 치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경북 봉화군은 북쪽으로 강원도 영월군·태백시와 맞붙어 있다. 태백산맥 서쪽 자락에 위치해 산이 많다. 사과·고추 등 밭농사를 주로 하는 척박한 곳이다. 공장 등 산업시설이 없어 인구가 3만5000명에 불과하다. 봉화군의 명물은 춘양목·송이다. 금강송으로도 불리는 춘양목은 재질이 단단하고 곧게 뻗어 명품 건축재로 꼽힌다. 춘양면에서 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숭례문 복원에도 이 나무가 쓰인다. 금강송 아래서 자라는 자연산 송이도 유명하다. 겨울철에는 최저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진다. 그래서 춘양면은 ‘한국의 시베리아’로 불린다.

영화 ‘워낭소리’의 무대인 경북 봉화군 상운면 최원균(80) 할아버지 집.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팬과 취재진이 몰리자 최 할아버지는 5일부터 외부와 접촉을 끊었다. 작은 사진은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봉화=프리랜서 공정식]


5일 오후 상운면. 중앙고속도로 영주IC에서 북동쪽에 있는 산골 마을이다. 이 마을에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 최원균(80) 할아버지와 이삼순(71) 할머니 부부가 살고 있다. 하눌1리에는 27가구(40여 명)가 살지만 2∼4가구씩 흩어져 있다. 이 마을에는 정적이 흘렀다. 최 할아버지의 집은 도로에서 150여m 들어간 야산 자락에 있었다. 옆집은 살던 사람이 떠나면서 폐가가 됐다. 최 할아버지 집만 외롭게 서 있다. 사랑방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마당에는 겨우내 쓸 나뭇단과 장작이 잔뜩 쌓여 있다. 외양간에 있는 소에는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거적이 씌워져 있다. 할아버지·할머니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다.

“영화가 뜨면서 사람이 많이 찾아와 두 분이 애를 먹니더(먹습니다). 조용하게 살던 분들인데 자꾸만 귀찮게 하이(하니)….” 한상갑(53) 이장은 “사람들에게 시달리면서 노부부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고 말했다. 최 할아버지 부부가 곤욕을 치르는 것은 영화가 개봉된 지난달 15일부터다.

‘워낭소리’는 최 할아버지 부부와 40살(보통 소의 수명은 20년 남짓) 난 그의 소가 가족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다. 7일까지 24일간 전국 43개 극장에서 23만여 명이 관람했다. 독립영화(소자본으로 제작된 영화) 사상 최고 기록이다. 이렇다 보니 영화 매니어나 방송사 취재팀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 촬영하는 등 할아버지를 귀찮게 해 고통이 크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화가 난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흔들며 촬영을 막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 이장은 “매일 두세 차례 집을 가르쳐 달라는 전화가 오고 있다”며 “할아버지 부부를 위해 앞으로 집을 알려주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영화 제작자도 할아버지 보호에 나섰다. 고영재(40) PD는 3일 ‘워낭소리’ 홈페이지에 ‘언론과 관객들에게 드리는 긴급 호소문’을 올렸다. 그는 호소문에서 “언론이건 일반 관객이건 할아버지·할머니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마음은 이해한다”면서도 “영화를 내일 당장 상영 중지시켰으면 시켰지, 두 분의 일상이 어긋나는 것은 정말 못 보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고민과 달리 봉화군은 한껏 고무돼 있다. 봉화군은 12일 군청 인근 청소년센터(관람석 340석)에서 ‘워낭소리’를 세 차례 상영한다. 엄태항 군수는 “우리 지역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주민과 공무원이 몰라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할아버지·할머니를 초청해 함께 영화를 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봉화=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워낭=소의 귀 뒤에서 턱 밑으로 늘어뜨려 단 방울. 소가 움직일 때마다 종 소리가 난다. 산이나 들에서 풀을 먹일 때 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일부 지역에서는 처마 끝에 다는 ‘풍경’의 소리를 닮았다고 해서 ‘소 풍경’이라 부른다. 불교 의식에 쓰이는 종인 ‘요령’의 소리와 비슷해 ‘소 요령’이라고도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