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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 시시각각

홍수환·박세리, 그리고 김연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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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의 현대사에는 국민에게 감동을 준 수많은 스포츠 스타가 있다. 거꾸로 스타 속에 한국의 역사가 스며 있기도 하다. 스타 속에 시대가 겪었던 고뇌와 국민의 눈물이 있다. 대한민국이 수천 년의 가난에서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치던 1970년대, 스포츠 영웅들은 대개 생계형 격투종목 선수였다. 특히 헝그리 복서가 많았다. 가난한 청년들은 시뻘건 눈으로 샌드백을 두들겼고, 하나둘씩 세계 챔피언이 됐다. 처녀들은 봉제·가발공장에서 밤늦게 졸린 눈을 비비며 라디오 실황중계를 들었다. 복서가 쓰러지면 같이 쓰러졌고, 일어나면 같이 일어났다.

 선수들의 승전보는 국가에 수출 목표 달성 같은 청량제였다. 74년 7월 홍수환이 WBA 첫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홍수환은 라디오 중계에서 엄마에게 “챔피언 먹었어”라고 했다. 엄마는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라고 했다. 홍수환은 훗날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아파트를 살 만한 금일봉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그 홍수환이 70년대 최고의 헝그리 드라마를 만들었다. 77년 11월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전. 홍수환은 2회전에서 파나마의 카라스키야에게 네 번이나 다운을 당했다. 3회전에 들어서자 홍수환은 불같이 일어나 카라스키야를 KO시켰다.

21년 후 그 대한국민이 다시 왔다. 98년 7월 온 나라는 외환위기로 지독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신음하던 국민 앞에 스물한 살의 처녀 박세리가 나타났다. 그때까지 LPGA 잔디밭은 하얗고 꽃다운 서양 처녀들의 잔치판이었다. 그런데 얼굴이 그을리고 다리가 굵은 동양 처녀가 챔피언이 되었다. 박세리는 헝그리 골퍼였다. 밥이 아니라 지독한 승부욕에 고팠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다리통을 만들었고, 공동묘지에서 담력을 키웠다. 98년 위기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그런 승부사 정신이었다. 98년의 대한민국과 박세리는 기가 막힌 궁합이었다.

운명의 경이로운 배려인가. 외환위기보다 더한 생사(生死)의 한복판에서 김연아가 요정처럼 춤을 추고 있다. 한국사에 수많은 스포츠 영웅이 있었지만 김연아는 다르다. 영웅들은 대부분 세계 대회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을 이기거나 특정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야구·핸드볼·하키·탁구·배드민턴 같은 구기종목이나 수영의 박태환처럼 개인종목에서 우승하는 건 물론 위대한 일이다. 양궁처럼 세계 신기록을 갖는 건 더욱 위대하다.

그러나 여자 피겨는 차원이 다르다. 개인의 피나는 노력도 필수적이지만 몸 자체가 명품으로 태어나야 한다. 76년 루마니아의 체조요정 코마네치는 인형 같은 몸매와 환상적인 연기로 세계인의 넋을 빼놓았다. 피겨도 체조처럼 몸과 연기가 일체가 돼야 명작이 나오는 예술적 스포츠다. 그래서 여자 피겨는 오랜 세월 하얗고 곱고 날씬한 서양 선수들의 무대였다. 그런 피겨에서 김연아가 역사적인 세계 기록을 세웠다. 김연아는 단순히 대한민국 선수가 아니다. 그녀는 어느덧 육체의 아름다움을 개척해 나가는 인류의 실험 대상이 되었다.

경제개발 40여 년 만에 한국의 청소년들은 세계적인 명품이 되고 있다. 평균 신장은 중국·일본보다 크고 유럽의 이탈리아와 비슷하다.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삼국시대와 고려·조선의 선조들에게 이런 유전자가 있었겠는가. 배를 곯으면서도 공장을 돌리고 철을 만들며 중동으로 달려갔던 60~80년대 할아버지·아버지 세대가 이런 명품들을 예약한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피의 사각 링과 땀의 테이블, 그리고 바람의 과녁을 거쳐왔다. 이제 드디어 보석처럼 반짝이는 ‘여자 피겨 얼음판’을 정복했다. 김연아의 동선(動線)에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경이로운 발전이 숨어 있다. 김연아의 가냘픈 몸에 쉬지 않고 달려온 대한민국의 거친 숨결이 숨어 있다. 어느 다른 나라에 이런 드라마가 있는가.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