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와 헤어진 소심한 20대 청년이 홀로 강원도 여행을 떠나고 설상가상 곤경에 처해 가는 얘기다. 물론 거기서 상황을 꼬이게 만드는 것은 ‘그놈의’ 술이다. 술과 여자에 약한 ‘수컷’ 보고서이자, 꼬일 대로 꼬여 버린 인생의 아이러니를 재기 있게 펼치는 발랄한 코미디다.
영화는 술을 주된 모티브로 하고, 술이 무장해제시킨 남녀의 민얼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홍상수 계보’(물론 좀 더 가볍고, 좀 더 웃긴 홍상수풍!)에 속하고, 주인공이 곤경에 처할수록 객석의 키득거림이 커진다는 점에서는 ‘뿐이고’ 개그(KBS ‘개그콘서트’ 중)의 영화 버전이라 할 만하다.
노영석(미술학도 출신.서울대 공예과) 감독의 데뷔작. 무엇이든 거절하지 못하고 ‘네, 네’ 하다 딱한 처지가 되는 주인공의 소심한 캐릭터를 비롯해 상황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재능이 돋보인다. 13일 총 10회 촬영으로 완성했으며, 제작비 때문에 실내와 밤 촬영을 접고 야외·낮 촬영 중심으로 찍었다. 돈 대신 강원도 여행을 시켜 주고 술을 무한정 준다는 감독의 말에 따라나선 총 10명의 스태프는 모두 한겨레 영화연출학교 동기들이다.
‘낮술’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JJ Star상과 관객평론가상을 받으면서 존재를 알렸다. 이어 로카르노·토론토·테살로니키(그리스)·스톡홀름·브졸(프랑스)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올 들어서만도 홍콩·부에노스아이레스·위스콘신 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이름을 높여 가는 중이다. 3월 중 미국 개봉도 추진한다.
감독은 다른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강원도 정선의 한 펜션을 찾아가던 중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역에서 펜션까지 2시간을 걸어가거나 고속버스 옆자리 여자가 자꾸 말을 거는 장면들은 그때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당시 “옆자리 아주머니가 말을 거는 게 너무 귀찮았다”는 감독은 “만약 이 아주머니가 예쁜 아가씨여도 내가 이랬을까” 반문했고, 이 대목은 ‘낮술’에서 흥미로운 웃음 포인트로 등장한다.
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