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번스타인 '백악관 칸타타' 8일 런던 바비칸센터서 초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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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지난 8일 런던 바비칸센터. 지난 90년 72세의 나이로 타계한 지휘자 겸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의 '백악관 칸타타' 가 세계 초연되었다.

번스타인의 명성을 말해주듯 표는 일치감치 매진되었다.

공연 시작전 오후 6시 15분부터 음악평론가 에드워드 그린필드의 사회로 번스타인 재단이사장인 해리 크라우트와 대담 형식의 프리콘서트 토크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번스타인의 소감을 담은 육성 테이프도 처음 공개됐다.

공연이 끝난 후 크라우트 이사장은 기자와 만나 "13일 BBC 3 라디오 녹음방송을 위해 공연실황을 녹음했다" 며 "DG.에라토 등 여러 음반사에서 레코딩 제의를 해와 내년 봄쯤 음반으로 발매될 것으로 본다" 고 말했다.

'백악관 칸타타' 는 런던 초연에 이어 내년에는 미국 뉴욕과 보스턴에서 연주될 예정이다.

21년만에 햇빛을 본 '백악관 칸타타' 는 번스타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펜실베이니아 애버뉴 1600번지' 를 콘서트 형식으로 개작한 것. 이 뮤지컬은 지난 76년 미국독립 2백주년 기념으로 초연됐으나 뉴욕 포스트 등으로부터 무차별 혹평 세례를 받아 오프닝 1주일만에 막을 내려 번스타인의 음악 인생 최대의 치욕과 충격을 안겨줬다.

생전에 "이 뮤지컬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 고 말했던 번스타인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백악관 칸타타' 로 개작해놓고도 서재 깊숙히 악보를 숨겨 놓고 레코딩 제의도 완강히 거절했다.

뮤지컬 '펜실베이니아…' 는 당시 브로드웨이의 무대사정 때문에 비올라와 더블베이스를 생략하고 각종 건반악기를 대량 동원했다.

이런 점을 감안, 번스타인은 '백악관 칸타타' 에서는 뮤지컬 스코어의 관현악 편성을 대부분 그대로 살리되 관악기가 건반악기의 몫을 하도록 수정했다.

해리 크라우트는 이 작품의 실패 원인을 뮤지컬의 복잡한 대본 탓이라고 분석하면서 음악 자체는 충분히 들을만하다고 주장했다.

재미있는 부분은 조지 워싱턴 미국대통령이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도에 자기 이름을 붙였다는 일화와 1812년 미국과의 전쟁 당시 영국군들이 백악관에서 파티를 벌이고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 에 가사를 바꿔 부르는 대목이다.

켄트 나가노 (리옹오페라 음악감독)가 이끄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바리톤 디트리히 헨셀이 워싱턴에서 루스벨트에 이르는 역대 미국 대통령역을 혼자 도맡았고 코벤트가든에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에 출연중인 소프라노 낸시 구스타프슨이 퍼스트 레이디역을 맡았다.

런던 보이시스의 박진감 넘치는 합창과 치밀한 앙상블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실패로 돌아갔다.

더 타임스.데일리 텔리그라프 등 영국언론도 실망감을 표시했다.

인기있는 지휘자 겸 작곡가 번스타인의 유작을 세계 초연한다는 이유만으로 떠들썩했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정작 공연에서는 음악의 흐름이 자주 끊어지는 등 애당초 뮤지컬의 실패원인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주제가 선율도 없고 재즈 리듬과 수자의 행진곡풍, 폴리리듬이 뒤섞여 복잡하기만 했다.

음악적 상상력의 부족을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을 칸타타로 '재활용' 한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던 것이다.

번스타인의 '백악관 칸타타' 는 '세계 초연' 이라는 딱지를 붙여 청중의 호기심을 자극해 매표로 연결시키려는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번스타인의 '백악관 칸타타' 를 포함해 런던심포니가 올해 일곱 작품이나 세계 초연하는 저력만은 부럽다.

<런던 =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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