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잡지 편집장 16세 소녀 김현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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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소녀의 이름은 김현진. 열여섯살 먹었다.

15일부터 인터넷에 뜰 10대용 웹진(인터넷 잡지)‘네가진’ (http://www.sss. co.kr)의 편집장이다. 10대가 10대를 위해 만든다는 잡지라지만, 그 나이에 어떻게 편집장을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어느 학교 다니니?”라는 물음에 예기치 못한 대답이 나온다. “학생은 아니고 그냥 청소년이에요.” 올해 입학한 고등학교를 지난달 그만뒀기 때문이다.

환하게 웃는 모양이 나쁜 아이 같지는 않은데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다니.왜 그만뒀을까.교장선생님이 “열린 교육이 무슨 소용이냐.대학입시에 모든 것을 걸어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충격을 받았단다.

사실 현실은 교장선생님 말씀대론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 인생에서 지극히 중요한 청소년기를 고등학교에서 잠재우기가 싫었어요.좋아하는 책과 비디오도 제대로 못 보고,하고 싶은 일도 못하면서 ‘쌀은 몇도에서 끓는가’의 답을 쓰기 위해 모든 시간을 뺏기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아요.”

사실 학교 다니면서도 어른들 보기에는 마구 튀는 생각과 행동을 했던 모양이다.영화집단 ‘푸른 영상’이 청소년들의 세계를 알아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하던 중 이야기나 들어 보려고 현진이를 만났다가 아예 “네가 찍는 게 낫겠다”며 8㎜ 비디오 카메라를 맡겨 버렸다니까.50분짜리나 되는 영화인데.

그런데 학교에서 휴일을 이용해 7∼8분 정도 촬영을 하겠다고 허락을 받으러 갔더니 선생님들이 이런 말을 했다.“절대 촬영은 안돼.너 성향조사를 했는데 남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소지가 많더라.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뭐 하는 거야.”

그래서 그만두고 대신 5분28초짜리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제목은 ‘셧 앤드 시’(Shut & See). ‘제발 간섭하지 말고 우리를 좀 지켜만 봐달라’는 의미다.학교 친구들의 생생한 생활과 생각을 담았다.소녀 감독은 선생님 몰래 촬영을 했다. 그리고 학교를 그만뒀다.친구들과 함께 하던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린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부모님의 반대를 어떻게 견뎠지? "목사인 아버지와 걱정 많으신 어머니는 크게 반대했지만 분단위로 시간표까지 작성해 학교생활의 시간 낭비적 요소를 말하는 저에게 두손을 들어 버린 거죠. " 대학은 안갈 것 같은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앞으로 영화 프로덕션을 차려 '허벅지 밴드' 등 친하게 지내는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들의 뮤직 비디오와 영화를 만들려면 대학공부는 해야죠. " 중학교 때 선생님의 권유로 참석했던 '또 하나의 문화' 라는 모임에서 대안의 교육문화를 역설하던 연세대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를 꼼짝 못하게 할 만큼 공부를 많이 하고 싶다고 한다.

지난 5월 조교수 집에 갔다가 청소년 전용 웹페이지를 제공하는 (주) 솔빛에서 일하는 언니를 만났다.

파격적인 조건이 제시됐다.

"일체 간섭 않겠다.

만들고 싶은 것은 뭐든지 만들어 잡지에 넣어봐라. " 그래서 중학교 3학년생 네명과 스물 여섯 먹은 아저씨 한명을 거느린 편집장이 됐다.

어떻게 만들고 있니? "같이 재미있게 놀아요. 놀다보면 생각도 글도 다 나와요. 첫호는 '나' 를 주제로 10대의 당당함을 표현했죠. 세상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 따끔한 소리도 빼놓지 않는다.

"어른들은 청소년 문제라고 하면 무조건 본드하고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의 일만 생각해요. 진짜 문제는 청소년들이 자유로운 꿈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데 있다는 걸 왜 모를까요. "

글=채인택·사진=방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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