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이것이 궁금하다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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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회사원 김영숙(33·여)씨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 적립식 주식형 펀드에 가입했다. 펀드 가입에만 1시간10분이 걸렸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우느냐”고 불평하자 창구 직원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펀드에 대한 설명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고객이 확인하고 서명하는 절차만 잔뜩 늘었다”며 “문제가 생기면 고객 책임으로 떠넘기기 위한 방어장치를 금융회사가 하나 더 챙긴 느낌”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에 따라 투자자 보호 규정이 대폭 강화됐다. 금융회사는 투자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투자상품만 권유해야 한다. 또 투자자가 확인하고, 서명해야 하는 서류도 많아졌다. 그러나 ‘투자자 보호 강화’란 말을 뒤집어 보면 그만큼 투자자의 책임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회사가 엉뚱한 펀드를 팔아 손해 봤다”고 문제를 제기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투자자 책임이 어떻게 커졌나.

“예컨대 투자 성향이 안정형으로 나오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할 수 없다. 그러나 ‘투자자 유형보다 위험도가 높은 투자상품 선택 확인’에 서명만 하면 투자할 수 있다.”

-형식만 바뀌었을 뿐이지 예전과 달라진 건 없지 않나.

“실제 모든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달라진 건 없다. 그러나 서명하게 되면 ‘금융회사가 상품을 잘못 권유해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해 봐야 소용이 없다. 서명한다는 것은 ‘투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걸 공식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품에 대한 설명을 소홀히 했다면 불완전 판매로 배상을 요구할 수 있지 않나.

“물론이다. 자통법엔 불완전 판매에 따른 금융회사의 손해배상 책임이 규정돼 있다. 손해배상 추정액은 투자자의 투자 금액에서 금융상품 처분 등을 통해 회수 가능한 금액을 뺀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 판매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분쟁이 빚어지면 투자자가 이기기 어렵다는 얘기인가.

“자통법 시행에 따라 ‘투자자 체크 리스트’란 게 새로 생겼다. 이를 통해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투자 판단의 책임은 고객에게 있다 등의 설명을 들었는지를 투자자가 직접 확인하고, 서명해야 한다. 해외 펀드라면 환 헤지에 대한 설명, 파생상품 펀드라면 최대 손실 금액을 포함한 투자위험을 설명받았는지까지 확인하도록 돼 있다. 귀찮다고 판매 담당자의 설명을 거부한 채 서류에 서명했다면 금융회사에 불완전 판매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이해했다’고 확인해도 마찬가지다.”

김준현 기자

※자통법과 관련한 독자 여러분의 문의를 받습니다. e-메일(economan@joongang.co.kr>)이나 팩스(02-751-5552)로 궁금한 내용을 보내주시면 유형별로 정리해 답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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