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성 사후 3년, 결산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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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일성(金日成) 사후 3년간 수많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대표적인 것은 경제난및 95~96년의 대홍수로 인한 식량난과 국제사회에 대한 식량원조 요청,'북.미기본합의문' 채택,4자회담 예비회담 수용 등일 것이다.

경제난 심화는 김정일정권의 가장 큰 장애요소였다.특히 식량부족은'무오류의 위대한 수령'김일성이 창시해낸 주체농법의 비과학성을 백일하에 드러나도록 했고,체제유지의 전가보도(傳家寶刀)였던 주민통제를 어렵게 만들었으며,국제사회에 식량원조를 호소하도록 함으로써 콧대높기로 소문난'주체사회주의'북한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미국은 북한안보에 가장 큰 위협세력으로 등장했고,김정일은 이의 해소를 위해 정면돌파식 북.미 직접대화 방법을 채택했다.김정일은 북한 핵문제를 지렛대로 대미 직접대화를 추진,'북.미기본합의문'채택을 통해 미국의 대북위협을 당분간 늦출 수 있게 됐다.

또 김정일은 4자회담 예비회담을 수용함으로써 남한을 배제하고 북.미 직접협상을 통해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기존 논리를 변경했고 죽기보다 더 싫어했던 남한의 국제적 위상을 인정했다.

한편 김정일은 사회주의권 붕괴와 김일성 사망이라는 충격여파를 최소화하고 주체사회주의를 보위하기 위해'김일성 영생론''유훈 관철''고난의 행군정신'등 온갖 구호를 다 동원했다.그리고 그는 주석및 당총비서 취임을 연기하고 군대식 주민동원을 위해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통치하면서까지 경제회복노력을 보였으나 주체사상의 근본적인 모순에서 발로된 외화및 원자재부족과 노동자.농민의 근로의욕감퇴로 인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제 3년상이 지남으로써 유훈통치명분도 사라졌다.따라서 뭔가 김정일의 독자적인 발전정책과 비전제시가 필요하게 됐다.만일 그렇지 못하면 김정일은 심각한 정치적 도전에 부닥치고 말 것이다.그렇다면 김정일은 정권을 유지하고 나아가 주체사회주의를 보위하기 위해 획기적인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할 것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정일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전향적인 정책은 채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그는 매우 신중한'방충망'식 개방만 시도할 것같다.이러한 태도는 지난 6월19일 발표한'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데 대하여'에서 김정일이“제국주의자들의 원조는 하나를 주고 열,백을 빼앗아 가기 위한 약탈과 예속의 올가미”라고 말한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물론 이 언술이 개방에 따른 사상적 해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예방조치용일 가능성도 있으나 그만큼 신중히 자본주의국가에 접근하겠다는 의도인 것만은 분명하다.따라서 북한의 특구(特區) 확대,금강산 관광개방,북.미관계 개선노력,4자회담성과 등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북한 인식방법에 있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북한은 황장엽(黃長燁)씨도 인정했듯이 봉건체제보다 더 낙후된 체제다.따라서 현대국가 내지는 초현대국가인 서방의 기준으로 북한을 봐서는 안된다.예를 들면 김정일 승계문제와 관련,승계지연이유가 경제난이나 북.미관계개선지연 때문이라는 등의 설명은 적실성이 없다.북한에서의 권력승계는 주민투표나 여론의 향배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적 존재인 김정일의 신탁(神託)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김정일이 경제난 해결을 위해 개혁.개방과 같은 합리적 선택을 취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즉 북한의 경제난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편입을 유발할 것이라는 예측은 우리의 일방적 기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북한의 특수성만 인정하고 북한의 합리적 선택을 무한정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동굴속에 들어 있는 북한을 신천지로 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전현준 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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