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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독특한 강연으로 인기돌풍 정덕희 명지大 사회과학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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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여자 서태지'.요즘 정덕희(44.鄭德姬)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에게 덧붙여진 별칭이다.웃음을 자아내는 독특한 입담과 제스처로 기업체 교육이며 각종 모임에 불티나게 불려다니던 鄭교수는 최근 방송까지 진출,전국에'정덕희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그뿐이랴.그의 저서'여자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중앙 M&B 간행)는 발매 20일만에 7만부를 돌파했다.“하나뿐인 인생,신나게 열심히 살자”는 鄭교수의 강연을 듣고나면 켜켜이 쌓였던 주부들의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사원들의 사기가 올라 기업체의 생산성은 배나 오른단다.과연 이'바람몰이'의 원인은 무엇일까.홍은희(洪垠姬)생활부장이 鄭교수를 만나 그 인기의 실체를 벗겨봤다.

호암아트홀에서 저서'여자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의 출판 기념 강연회를 끝낸 직후 본지 편집국에 들른 鄭교수는 청중들에게 열정적으로 강연을 한 뒤라서인지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오늘(2일)도 엄청나게 많은 청중이 몰렸다죠.주로 어떤 분들이 오셨습니까.“정말 평범한 서민들이죠.20대 미혼남녀에서 며느리를 본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오셨어요.” -오늘도 역시 청중을 즐겁게 해주셨습니까.“그럼요.저를 보겠다고 먼 곳에서들 오셨는데 열심히 해야죠.'정덕희,실제로 보니 시시하다'는 소리 들으면 되겠습니까.” -왜 그렇게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세요.“동질감을 주기때문 아닐까요.제가 거침없이 하는 얘기를 들으며 많은 분들이'그래 바로 내 얘기야'라고 느끼신대요.또 이런 점도 있어요.저를 특히 좋아하는 계층이 우리 사회에서 중간이하에 속한 분들이거든요.그분들은 아무한테도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종류의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없대요.사실 많이 배우고 잘 사는 사람들이야 여기저기서 좋은 얘기를 들을 기회도 많잖아요.하지만 돈없고 배운 것 없는 분들은 먹고사는데 바빠 인생이니 뭐니 생각할 틈도 없었던거죠.제 얘기가 쉽고 재미있으니까 그런 분들 가슴속에 팍팍 가서 꽂혔던 것 같아요.” -한달에 1백시간 이상 강연을 다니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게다가 최근에 방송 프로그램도 두 개나 진행하시는데 같은 얘기를 되풀이하게 되지는 않습니까.“대한민국에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그러니 얘깃거리가 많아질 수 밖에요.주제는 같더라도 늘 다른 예화를 섞어 넣으려고해요.아마 내일 강연에선 오늘 출판 기념 강연회 얘기를 하겠죠.또 같은 그룹을 대상으로 두번 강연하게 되지는 않거든요.듣는 사람에겐 늘 새로운 얘기일 수 있죠.그러니까 방송출연 전엔 옷 한 벌로 한달을 버틸 수도 있었어요(웃음).” -말이 나왔으니 여쭤보죠.옷은 몇벌이나 있습니까.“별로 많지 않아요.방송 출연용 의상은 아는 업체를 통해 잠깐 빌려 입는 식으로 해결하고 있지요.오늘도 너무 화려해서 청중들 눈에 거슬릴까봐 미리'제 친구가 빌려줬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했어요.안그러면 자기는 화려하게 하고 다니면서 우리 보고만 검소하게 살라고 한다고 할것 아녜요?”(鄭교수는 늘 강연에서'남자들은 설렁탕 먹고 다니는데 주부들이 갈비 먹어서 되겠냐'며 여성들에게 검소하게 살 것을 충고한다) -사실 솔직하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바로 그 점이 인기를 얻는 한 요인인 것 같군요.팬레터도 많이 오겠네요.“그럼요.편지뿐이 아니예요.다달이 종이 박스에다 산나물 말려서 보내는 사람,종이공예 작품을 만들어서 보내주는 사람등 가지가지예요.” -사인해달라는 사람은 없습니까.“연예인 이상이죠.호텔행사 같은데 가면 사람들이 제게 구름처럼 몰려드니까 초등학생들은'우리가 모르는 사람인데 어느 프로에 나오는 연예인이냐'고 묻기 일쑤예요.팬들 덕분에 저는 사인 빨리하는 연습까지 했답니다.” -鄭교수의 트레이드 마크라면 단연 특유의 말투와 제스처죠.이건 어떻게 탄생된 겁니까.특별히 연습을 하셨습니까.(콧소리를 섞어'했어용'하는 그의 말투는 모 개그맨이 흉내냈을 만큼 유명하다)“저는 항상 풀어지지 않고 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예전에 여직원대상 챠밍교육 같은 것도 했는데 그때 나름대로 연구를 했죠.목소리는 타고난 재주(?)여서 자유자재로 변성이 가능하구요.사실 저는 제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이게 잘되는 건지 아닌지 궁금했는데(실제로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이런 제 제스처와 말투를 TV로 보니까 괜찮더라구요.” -사회교육 강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부잣집 맏며느리로 시집갔던 제가 우여곡절끝에 지하셋방 신세가 되면서 보험.여성잡지 세일즈를 하게됐었죠.결혼한지 10년째인 서른다섯되던 해죠.세일즈를 하면서 알게 된 한 사회교육원장께서 당시 최고 인기였던'사랑받는 아내교실'의 조동춘씨와 너무 닮았다며 사회교육 강사가 돼보라고 권하셨지요.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지만 차밍스쿨.성공학 강좌등을 열심히 찾아다녔어요.'사회교육강사 정덕희'를 알리는 팜플렛을 각 기업체.사무실등에 돌리고 나서 집 전화기의 자동응답장치에'안녕하십니까.현대여성교육원입니다'라고 녹음을 해두고 강연요청을 받았지요.1인 교육원을 연거죠.강연 요청을 해온 기업에서 담당자가 사무실에 들른다고 하면,스케쥴 핑계를 대고 시내의 유명한 커피숍에서 만났어요.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쌓아간 사회교육강사 경력으로 대학원에 들어가고,교수까지 된겁니다.” -가난한 집안의 10녀2남중 아홉째 딸로 태어나셨다면서요? 딸에게 지어줄 이름자가 동이 나 버려 우연히 만난 경관이 덕(德)자를 줄 때까지 2년이나 이름없는 존재로 지내야 했다는 얘길 책에서 봤습니다.바로 이같은 성장 배경이 어떤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아닌지요.“그랬던 것 같아요.저는 제가 들꽃이라고 생각해요.제가 이렇게 연약해보이지만(그는 165㎝에 45㎏이다) 누가 저를 짓밟으면 무서운 면을 보여주죠.” -코스모스가 아니라 엉겅퀴라는 말씀이네요.그런데 그런 분이 부잣집 맏며느리 노릇할땐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듣기론 한남동에 정원 2백평 딸린 집에서 가든파티 하며 사셨다던데요.“워낙 가난하게 자라서 어릴때부터 부잣집에 시집가는게 꿈이었거든요.막상 꿈을 이루고보니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더라구요.날개잃은 새처럼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았었죠.저는 단순한 옷을 좋아하는데 어머니가 사다 주신 얼룩덜룩한 옷 입고,빨간 슬리퍼 신고,화장기도 없이 머리 질끈 묶고,애들 키우며 살았다니까요.그래도 알뜰살뜰 아이들 키우고 반찬 하나라도 시부모님 좋아하시는 걸로 마련하며 열심히 살았죠.” -요즘은 집에 가면 어떠세요.살림은 직접 하시나요?“두가지를 다 잘하지는 못하겠더라구요.예전엔 살림 잘하고 음식도 잘했어요.하지만 요즘은 엉망으로 살아요.이틀간 집안꼴이 엉망이다가 일하는 아줌마가 와서 치워주면 괜찮아지곤 하죠.” -그런 엄마의 변화에 대해서 아이들은 뭐라고 합니까.“처음엔 싫어했죠.우리 딸이 유아원에 다닐때 제가 바깥일을 시작했거든요.예전에 여유있게 살던 시절에는 아이들과 소꼽장난하고 계곡으로 놀러다니면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던 엄마였죠.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나돌아다니니까 우리 딸이 일기에'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라고 쓰더라구요.중학교쯤 가니까 엄마를 이해해요.요샌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엄마라며 엄마처럼 살고싶다고 해요.” -남편은 뭐라고 하세요.'스타 부인의 남편'으로 살아가는데 불편해 하시지는 않습니까.“아무래도 그렇죠.그래서 제가 집에 가면 더 잘해요.오히려 바깥 활동을 많이 하는 여자들이 집에 가선 더 죽어지내잖아요.똑같이 행동해도'요즘 돈 좀 번다고 그러냐'며 삐딱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여자들이 일하려면 신경쓸 게 너무 많아요.다행히 우리 남편은 이해심이 많은 분이지만요.” -鄭교수 한달 버는 돈이 웬만한 직장인 연봉은 된다면서요.“저 돈 얘기하기 싫어요.돈때문에 일하는거 아니예요.그냥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아서예요.무대에서 사람들 앞에 서면 막 신나요.체질인가봐요.” -강연에서 청중을 휘어잡는 비법 좀 가르쳐 주시죠.“우선 청중들이 마음의 문을 열도록 만듭니다.문이 안 열리면 열릴때까지 별 짓을 다해요.얼마전엔 서울 목동에서 중산층 주부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데 이분들이 워낙 수준이 높아서인지 통 웃지 않는거예요.그래서 제가 이랬죠.'저도 우아했었어요.61평 사신다면서요.김포공항 상공에서 보면 61평도 코딱지만합디다.저도 더 넓은데 살았었지만 그러다 지하셋방도 가게됩디다'라구요.그랬더니 웃더라구요.남자들도 제가 꽉 잡아요.사장님들 교육 가면 의자 뒤로 딱 제끼고 앉아계시죠.그러면 책상을 탁 치면서'자세 바로 하세요.지금 나같은 여자도 직업의식을 이렇게 발휘하는데 한 기업을 책임 진 사람들이 이런 자세라면 기업꼴이 도대체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소리를 지릅니다.굉장히들 좋아하세요.” -강사생활 8년동안 60만명을 만나셨다는데 가장 잊지못할 강연은 언제였습니까.“모기업 지방공장에서 생산직 남자직원들을 33차에 걸쳐서 강의했어요.그런데 이 분들이 패배주의에 젖어서 제 순수한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하도 야유를 퍼부어 다른 강사들은 중간에 다 손들고 가버렸대요.저도 힘들었죠.'당신이 여자맞아.절벽이잖아'이런 성희롱적인 말들까지 들었으니까요.하지만 오기로 끝까지 해냈어요.사실 소외계층에게 강연하는게 참 어려워요.반대로 너무 잘나가는 분들도 다루기 힘들죠.의사.변호사들 앞에서 강연하면'그래 너 얼마나 잘하나 보자'이런 표정으로 쳐다보시거든요.그래서 그런 쪽 강연 요청은 좀 피합니다.” -제가 보기엔 鄭교수께서 인기를 끈데는 여성들의'신데렐라 컴플렉스'를 자극한 것도 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먼저 가난한 집 천덕꾸러기 딸이 부잣집 맏며느리가 됐죠,그다음엔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뒤 평범한 주부로 돌아갔다가 인기 강사로 변신하셨잖아요.“저도 그렇게 생각해요.그런데 한국 주부는 망상가가 많아요.저는 여기까지 오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한 예로 강사 일 시작하기전엔 사회교육기관 같은데 가서 돈 안받고 청소해주면서'아 이런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하고 배웠답니다.

제가 퍼붓는 강의엔 그런 경험들이 들어있는 겁니다.세상에 공짜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요즘 여성들은 성공한 제 현재의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그 뒤에 숨겨진 고생을 감수할 생각은 안해요.인생은 계단식이예요.밑바닥부터 시작해야죠.” -그런데 다시 태어나면 평범한 주부가 되고싶다고 하신 적이 있다는데 이유가 뭡니까.“저는 주부도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해요.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요.가족들이 훗 후르륵 소리(실감나게 혓마닥 내밀면서) 내면서 먹어주면 밥상을 차리는 일도 얼마나 보람 있습니까.남편 없고 아이 없을 때는 주부가 퍼져 있어도 됩니다.하지만 가족들 오면 웃는 얼굴로“여보 힘들었죠”하고 말해줘야죠.주부들 맨날 똑같은 일 한다지만 저도 맨날 똑같은 말 하잖아요.같은걸 새롭게 만드는 노력이 중요한 거죠.” 정리=신예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프로필>

▶54년 충남 예산 출생▶충남 예산여고 졸업.한국방송통신대학 수료▶동국대 교육대학원(교육경영 전공) 졸업.연세대 교육대학원 고위과정 수료▶현재 현대여성교육원 원장.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현대시인협회 회원▶남편 이영덕(51.李永德)씨와 1남1녀▶SBS TV'신바람 스튜디오'(수요일 오후 4~5시).SBS FM'정덕희의 신나는 세상'(매일 오후 2~4시) 진행중▶저서'변신하는 여자'(풀잎)'희망'(풀잎)'신세대 여사원의 예절'(현대여성교육원)'색깔있는 여자가 성공한다'(지학사)'한국적인 친절서비스'(신원문화사)'여자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중앙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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