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115. 내가 만난 사람-키신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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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시드니올림픽 때 태권도 경기장을 찾은 키신저(中)가 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왼쪽은 사마란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의 인연도 꽤 오래 됐다. 처음 만난 것이 1964년이었으니 벌써 45년이나 지났다. 내가 하버드대 여름학기에 갔을 때 그는 유명한 국제정치학 교수였다. 그는 23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열다섯 살 때인 38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하버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키신저는 62년 이 대학 교수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국제 세미나로 이름을 떨쳤다. 학기 중에 그와 함께 케임브리지 교외에 있는 중국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다.

키신저는 닉슨 행정부 시절 대통령 안보보좌관으로 들어갔다. 70년 백악관에서 만난 그는 나를 기억했다. “가라테 맨 아니냐”고 한다. 깜짝 놀랐다. 정말 놀랄 만한 기억력이었다. 6년 전에 한 차례 만난 사람을 기억하다니. 71년 국무부 장관이 된 그는 미국과 중국 간 핑퐁외교에 큰 일을 했고, 중동 평화협정을 이끌어내 73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 후 다시 그를 만난 것은 서울에서였다. 90년 월드컵 축구 유치위원장 자격으로 월드컵 미국 유치 지지를 요청하러 온 것이었다. 김용식 전 외무장관과 함께 롯데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월드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축구에 관한 한 약소국(?)이었다. 그때는 유치에 실패했지만 미국은 결국 94년 월드컵을 유치해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렀다.

99년 봄 IOC가 솔트레이크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 키신저는 IOC 명예위원이 됐다. 미국 측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사마란치가 끌어들인 것이다. 그 후로는 자연스럽게 키신저와 자주 만나게 됐다. 키신저는 IOC 개혁을 위해 많은 조언도 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장밋빛 햇볕정책의 그림이 나올 때였다. 정상회담 내용과 햇볕정책에 대한 설명을 듣던 키신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김정일이 정말 개방을 하겠느냐. 개방을 하면 북한 체제가 무너질 텐데 믿을 수가 없다”고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우리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으나 국제관계에 정통한 키신저의 눈에는 실현 불가능한 일로 보인 것이다.

비록 정식 IOC 위원은 아니지만 키신저는 IOC 총회가 열릴 때마다 꼭 참석한다. 이제는 개방된 IOC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만날 때마다 한국 정치에 큰 관심을 보이곤 했다.

스포츠와 국제정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키신저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처음 정식종목이 된 태권도를 보려고 경기장을 찾았다. 사마란치와 함께 온 키신저는 나에게 태권도 유래와 경기방식·규모 등 궁금한 것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64년 보스턴에서 만난 한국의 ‘가라테 맨’이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고,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에 넣어 시드니에서 경기를 주관하는 것을 보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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