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피고지고 피고지고' 4년만에 재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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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만4년전이다.늘 물리적인 거리감 못지않게 심리적 거리감이 커서 관객들이 발길이 잘 닿지 않던 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이변의 주인공은 이만희 작.강영걸 연출의 연극'피고지고 피고지고'였다.극장 관례상 소극장공연의 경우 20일밖에 공연할 수가 없었음에도 이 작품은 국립극단 사상 처음으로 연장공연까지 하며 손님을 받았다.

공연결과 30일 공연(총30회)에 총관객 7천9백34명,객석(4백54석)점유율 70%.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이 작품은 국립극단의 주요 공연기록을 순식간에 바꿔놓는 쾌거를 이룩했다.

당시의 이런'예상밖 성공'을 정상철 현 극단장은“'창작극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통념에 대한 반란”으로 풀이했다.상식적인 얘기지만“재미와 오락성을 겸비한 수작은 온갖 고정관념의 벽도 넘을 수 있음을 깨우쳐준 작품”이란 게 그의 분석이다.

국립극단이 4년만에 이 작품을 다시 선보인다.그동안 극단 책임자들이 바뀔 때마다 호평작의 레퍼토리화를 입이 닳도록 외쳤지만 공약(空約)에 머물었던 것을 이제야 이 작품으로 그 실천의 첫 결실을 맺게 됐다.

초연때와 같이 국립극단의 개성파'4인방'김재건.오영수.이문수.손봉숙이 출연할 이 작품은 일확천금을 꿈꾸는'엉뚱한'어른들이 엮는 한편의 동화다.사기.절도.밀수로 점철된 왕년의 화려했던 전과범 훈장(?)을 앞세우고 이들이 다시 군부대 지하에 감춰져 있다는 보물을 찾아 떠나는'오딧세이'같은 이야기. 보물의 유무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땅파기에 매달리는 이들의 일탈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들은 어느덧 인생과 물욕의 덧없음을 깨닫는다.“떵떵거리며 살았든 죽을 쑤며 살았든 똑같은 거야.그저 피고지고 피고지고하는 거야.이쪽저쪽 옮겨다니면서….”(대사중에서). 이번 재공연은 최근들어 연극계에 우연찮게 불고있는'이만희 다시보기 흐름'과도 연관성이 없지않다.단짝 연출가 강영걸과 함께 그는 대학로 작은두레에서'돼지와 오토바이'(94년작)를 리바이벌하고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그를 다시 봐야할 이유를 연극평론가 구히서씨는 이렇게 말했다.“요즘 우리의 작가(특히 젊은 작가들)들은 번역투와 TV드라마류의 상용화된 언어들에 너무나 매달려있다.

연극이 연극답기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반면 이 작가는 수다스럽고 입심좋은 우리말의 말투와 어휘,뉘앙스를 제대로 살려내는 힘이 있다.또한 개성있는 인물을 보편적 이야기로 꾸며내는 재주도 남다르다.” 국립극단은 팬서비스 차원에서 이번 공연기간동안 유료관객중 2명을 뽑아 21일부터 진도에서 있을 단원들의 수벽치기 연수(육태안 지도)에 동행할 계획.10~20일 평일 오후7시30분,토.일.공휴일 오후4시 국립소극장.02-274-1171. 정재왈 기자

<사진설명>

4년만에 다시 만나는 국립극단의 '피고지고 피고지고.'출연자도 초연때와 같다.왼쪽부터 김재건.손봉숙.오영수.이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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