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s] 점포 없으면 배포로 일어서면 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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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잉크·토너를 교체해주는 무점포 창업을 한 임길묵씨(左)가 고객의 사무실에서 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실내 환경을 관리하는 배순구씨 .


◆가방만 들고 사무실 노크=임길묵(40)씨는 PC방을 운영하다 폐업하고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에 ‘잉크가이’(www.inkguy.co.kr) 가맹점을 냈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은 뒤 고객을 찾아가 잉크나 토너를 리필해 주는 일이다. 이름은 가맹점이지만 매장은 없었다. 휴대용 충전장비 가방과 물품을 싣고 다닐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있으면 ‘준비 끝’이다. 1500만원을 들여 창업한 그는 초기부터 자신만의 영업 전략을 세웠다. 가정보다 사무실이나 기업체를 뚫기로 했다. 그는 “가정에선 잉크 하나를 충전하는 데 그치지만 기업체는 두세 가지 제품을 한꺼번에 충전하기 때문에 수익이 높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기업에 거래를 트기는 쉽지 않았다. 비용 절감 효과를 정리한 제안서를 들고 각 기업의 사무실 문을 몇 번이고 두드렸다. 이런 노력 끝에 기존 고객의 소개로 다른 사무실로 거래처를 늘리는 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 잉크가이 본사에서도 기업체나 관공서와의 충전 계약을 알선해 줬다. 그는 충전 서비스를 하면서 사무용품이나 전산 소모품을 함께 팔았다. 사무실 직원들이 잉크·토너를 충전할 때 복사용지 등을 함께 주문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는 요즘 월 400만~5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어린이집 못 박아주며 거래처 확보=배순구(46)씨는 서울 방배동에서 실내 환경을 관리하는 ‘에코미스트’(www.ecomist.co.kr) 사업을 한다. 사무실·병원·유치원에 자동 향기 분사기를 설치하고 리필해 주는 일이다. 건물 공조기에 살균장치를 설치해 공기 질을 개선하고 실내를 소독하는 작업도 한다.

10년 동안 건축회사에서 일하다 독립해 자재 사업을 했던 그는 불경기로 매출이 줄고 거래처가 도산하면서 사업을 접었다. “직원들 월급 챙겨주고 밀린 자재 대금을 갚고 나니 남은 돈이 별로 없더군요. 뭘 하긴 해야 하는데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는 1000만원을 들여 무점포 창업을 했다. 본사에서 환경교육을 받은 뒤 장비를 싣고 다니며 일하기 때문에 점포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천연향의 경우 가정과 쇼핑센터를, 공기 질 개선 일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주로 공략했다. 건축 일을 했던 인맥을 활용해 새로 분양된 주택에 새집증후군 예방 작업을 하는 데에도 뛰어들었다. 거래처를 만들기 위해 어린이집에선 청소를 돕고 벽에 못을 박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기 질 측정 장비를 들고 다니며 작업 전후의 수치를 비교해 주기도 했다. 현재 150여 곳을 관리하며 월 500만원 정도를 번다.

◆온라인·세탁업까지=산업·사무용품 구매 대행 업체인 ‘구매로’(www.gumero.com)는 유통과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발주 프로그램을 개발해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온라인 사업을 선보였다. 중소기업이나 공장에서 쓰는 산업 재료나 사무용품을 책상에 앉아 주문받은 뒤 배송처리 버튼만 누르면 본사가 대신 상품을 발송해 준다. 가맹점주가 할 일은 영업이다. 구매를 담당했던 퇴직자나 직장인의 투잡으로 적합하다. 창업 비용은 200만원. 세탁 전문점 ‘크린토피아’(www.cleantopia.com)는 전화나 인터넷으로 빨랫감을 접수해 차량으로 수거한 뒤 세탁공장에 보내 다시 배달해 주는 무점포 창업주를 모집 중이다. 기존에도 작은 공간에서 세탁물을 받아 공장을 거쳐 전달했는데, 아예 점포 없이 세탁소를 차리게 만든 셈이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은 “무점포·소호 창업을 할 때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거나 기존에 없는 아이템을 발굴한다면 독립 창업이 가능하고, 장기가 없을 경우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택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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