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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대기자의시각>一國兩制의 향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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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식민통치(植民統治)여,영원히 안녕.” 영국의 홍콩통치는 중국에는 참으로 가혹한 현실이었다.홍콩이 가장 성공적인 자본주의의 모델이 되어 거금(巨金)을 안고 돌아온다고 해도 중국인들이 당한 굴욕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현실에 비하면 홍콩이 1백50년에 걸친 영국지배를 벗어나 중국으로 반환되는 6월30일 자정의 역사적인 의식은 너무 상징적이었다.

반환식 이틀전에 만난 어느 영국 언론인은 홍콩반환 얘기는 진저리가 난다고 불평했다.

귀국을 앞둔 영국의 어느 고위관리는 중국 정부가 기회만 있으면 1840년의 아편전쟁을 선전하러 드는 것이 영국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도덕적인게 있을 수 없지만,특히 아편전쟁은 그당시 중국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고사(枯死)시킨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었으니 영국 사람들로서는 잊고 싶은 과거다.

옆에 있던 이탈리아 언론인이“그래도 영국의 홍콩통치는 역사상 유례없는 모범적인 식민지 지배였다”고 위로의 말을 했다.아쉬운게 있다면 영국이 식민지 독립의 열풍이 불던 1960년대에 홍콩을 떠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이 홍콩을 떠날 기회와 위기는 한번 있었다.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공군이 장제스(將介石)의 국부군을 밀어내고 광둥(廣東)을 포함한 중국을 평정했을 때다.

그러나 중공군은 홍콩을 점령하지 않았다.이탈리아 언론인이 익살스러운 해석을 달았다.“먼 앞날을 내다 본 毛가 홍콩을 키워 차지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했던거지요.” 영국의 시대착오는 너무 오래간 것 같다.중국의 이해관계에서 보아도 홍콩은 너무 커버렸는지도 모른다.특히 문화적으로 그렇고 홍콩사람들의 의식이 그렇다.

많은 홍콩 사람들은 영어 이름을 갖고 있다.그런데 영어 이름과 성과 중국 이름을 나열하는 방식이 특이하다.민주당의 당수 마틴 리의 경우 중국 이름은 이밍(柱銘)이다.영국식으로 표기하는 그의 이름은'마틴 리 이밍'이 된다.유교문화권에서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성(姓)을 영어 이름과 중국 이름의 가운데 집어 넣는다.영어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모두가 그렇다.

이게'바나나 증후군'이다.겉은 동양적으로 노랗고,속은 서양적으로 희다.

영국은 민족주의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체제가 감당하기 쉽지않은'바나나 세대'를 양성해 놓은 것이다.

이것도 홍콩반환의 양면성이다.중국에게 그것은 기회이면서 도전이고 홍콩 사람들에게 그것은 모국으로 돌아가서 기쁘고,공산주의 중국으로 돌아가서 불안한 변화다.

중국은 믿어도 공산당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많은 홍콩 사람들의 생각이다.50년전 영국이 인도를 떠날때 네루는“자정에 자유를 얻었노라”고 말했다.네루가 홍콩 사람이라면 오늘 자정에 어떤 명언(名言)을 남겼을까. 중국은 홍콩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행복만 보장해 주면 정치적으로 큰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다.홍콩 사람들을'경제적 동물'로만 보는 것이다.그러나 빵문제가 해결되면 자유와 권리를 달라고 하는게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홍콩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매년 6월4일 천안문사태 기념일에 홍콩자치정부가 대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의 데모를 어떻게 다루는가,민주투사들의 설땅을 얼마나 갖는가를 보면 홍콩의 미래를 쉽게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중국과 영국은 이런 구체적인 문제들은 접어두고 초월적인 입장에서 홍콩문제를 해결했다.6월28일 영국치하 입법회의가 마지막 회의를 끝낸뒤 민주당 원내부총무 쓰투화(司徒華)는“식민통치여 안녕,영원히 안녕…”이라고 비장하게 말했다.그러나 그것은 홍콩 사람들의 감상(感想)의 열린 쪽의 절반밖에 표현하지 못한다.그들이 닫힌 쪽의 마음을 언제 어떻게 토로할 것인가는 베이징(北京)에 달렸다.

빅토리아항의 밤하늘에 작열하는 불꽃을 보면서 5년이나 10년후 홍콩에서“그리운 옛날이여…”가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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