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정보단말기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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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기불황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타격을 받는 분야가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출판은 특히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살림이 어려워진 독자들이 문화비 지출부터 줄이느라 예전처럼 책을 사보지 않는 탓이다. 이러한 출판산업 위기의 본질은 사실 ‘책의 위기’라는 시각이 있다. PDA나 PMP, 스마트폰 같은 첨단 정보단말기들이 널리 보급되면서 책이라는 낡은 매체는 서서히 사라져 가는 일종의 문명 전환기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과연 책의 미래는 이렇듯 암담한 것일까.

아이작 아시모프는 미래 사회를 전망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정보단말기를 언급한 바 있다.

“4~5세 어린이도 금방 깨우칠 수 있을 만큼 사용법이 쉽고, 색인을 통하면 원하는 내용의 즉각적인 열람이 가능하다. 게다가 고장이 거의 나지 않고 수리도 쉬운 편이다. 온도나 충격 등에도 강해 보관하는 데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특히 매력적인 것은 작동하는 데 별도의 전원이 필요 없어 수명이 반영구적이다.”

이 매체의 이름은 다름 아닌 ‘책’이다. 아시모프는 이 같은 책의 장점들은 쉽사리 대체될 수 없는 것이므로 책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고 역설한 것이다.

첨단 기술이 반영된 디지털 정보단말기가 책보다 뛰어난 점은 엄청난 정보용량과 네트워크 기능이다. 동영상이나 하이퍼텍스트 검색은 정보의 양과 질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며, 다른 매체와의 실시간 통신을 통해 정보의 업데이트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런 점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책을 읽는 인간’의 정서와는 좀 동떨어진 면이 있다. 조그만 메모리스틱에 책 몇천, 몇만 권이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자료를 검색할 때가 아니면 이런 엄청난 양의 텍스트가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에 소화하지도 못한다. 또 네트워크로 외부와 항상 연결되어 있으면 조용히 독서에 몰두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기대하는 전형적인 모습, 즉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에 몰입하기’란 첨단 디지털 환경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풍경인 것이다.

앞으로는 활자매체보다 영상매체가 대세라는 주장이 있다. 컴퓨터그래픽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시각화가 가능해졌다. 나날이 쏟아져 나오는 판타지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상은 활자에 비해 우리의 상상력을 더 제한해 버린다. 텍스트가 주는 정보의 양이 적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창의적 상상을 해야 하지만, 이미 시각화된 형태로 제시되면 그만큼 상상의 폭은 줄어든다. 영상을 보는 사람은 활자를 읽는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수용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뉴스나 학술 분야 등 팩트가 필요한 경우에는 이런 방식이 훨씬 요긴하겠지만,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인문교양, 특히 문학에서 활자의 중요성은 절대적인 것이다.

결국 정보의 양이 아주 많지도 않고 네트워크 기능도 없으며 더구나 동영상을 재생해 보일 수도 없지만 책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단말기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러한 책의 미래가 위협받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책이 우리 두뇌 속으로 들어와 버리는 경우일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나노 기술과 신경생리학이 결합되면, 인간의 두뇌 속에 메모리칩을 이식해 넣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책은 글자 그대로 인간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해지려면 아직은 더 세월이 흘러야 한다. 게다가 인체공학의 윤리성이라는 사회적 논란도 있다. 물론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이므로 소득계층에 상관없이 공평한 방식이 되려면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책은 정보단말기로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앞으로도 훨씬 더 긴 수명을 지니게 될 듯하다.

박상준 오멜라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