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조류, 육상작물보다 기름 10배 더 생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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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24면

생물이 살 수 없었던 태초의 지구를 푸르게 바꿔 놓은 게 남조류로 불리는 미세조류다. 지구상에 광합성을 하는 첫 생물로 자리 잡은 이들은 하늘과 바다에 가득했던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꿔 오늘날의 고등생물이 출현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았다. 에너텍 김성수(50·사진) 대표는 미세조류가 다시 한번 지구를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온난화 문제를 일으키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무한한 에너지의 보고로 미세조류가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조류가 만드는 식물성 지방은 그대로 바이오 디젤의 원료가 된다. 에너텍은 지난해 9월 국토해양부로부터 국내 첫 해양 바이오 에너지 기술개발 업체로 선정됐고, 10월엔 해양수산기술진흥원으로부터 해양 바이오 디젤 생산공정 개발 사업을 수주했다.
 
-바이오 에너지는 땅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지금까진 그랬다. 휘발유 대신 쓰이는 바이오 에탄올은 옥수수와 사탕수수 등 전분이 많은 작물이 원료다. 바이오 디젤은 팜 등 지방이 많은 식물에서 추출한다. 모두 육상식물이라 엄청난 넓이의 땅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 지구의 허파인 열대우림이 파괴돼 환경을 해치고, 식량을 연료로 사용하는 데 따른 국가 간, 계층 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바다를 에너지 창고로 쓴다면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다.”

‘해양 바이오 디젤’ 개발 나선 에너텍 김성수 대표

-좋은 얘기지만 현실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조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자다. 육지작물 중 가장 바이오 디젤이 많이 나오는 팜이 1만㏊당 약 6000t을 뽑을 수 있는 데 비해 미세조류는 같은 면적에서 10배인 6만t을 생산할 수 있다. 개체의 크기가 워낙 작아 막대한 숫자로 빨리 증식시키는 게 과제다.”

세계적으로 바이오 에너지를 더 많이,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연구되고 있다. 미국 듀폰사 등에선 옥수수 열매의 전분뿐 아니라 줄기에 다량 함유돼 있는 셀룰로오스에서 에탄올을 뽑아내는 방법을 상용화하려 하고 있다.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 있는 김·미역 등의 거대조류에서 바이오 에탄올을 뽑아내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우뭇가사리를 이용한 에탄올 생산 실험이 성공했다. 이에 비해 미세조류를 이용한 바이오 디젤 생산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여러 분야 가운데 굳이 바이오 디젤 개발에 나선 이유는.
“한국에선 휘발유보다 디젤 소비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국의 디젤 소비가 휘발유의 60%인 데 비해 한국은 2.2배에 달한다. 디젤은 같은 양을 연소시킬 때 휘발유보다 훨씬 많은 오염물질이 나온다. 미국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휘발유를 대체하기 위해 바이오 에탄올 개발에 주력하는 것처럼 한국은 디젤을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이 절실하다.”

-바이오 에너지도 연소시키면 결국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나.
“맞다. 하지만 그 정도가 훨씬 덜하다. 석유엔 탄소와 수소뿐이지만 바이오 에너지엔 산소가 더 들어 있다. 완전연소 비율이 높은 만큼 공기를 오염시키지 않는다. 화석에너지와의 결정적 차이는 생산 과정이다. 미세조류를 포함해 바이오 에너지의 원료가 되는 식물은 모두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성장한다. 석유나 석탄처럼 일방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윤활 성분이 함유돼 있어 윤활유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세계에서 해양 바이오 에너지를 상용화한 곳이 있나.
“미국 등 선진국에선 해양 바이오 디젤 양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미 효율성이 높은 10~15종의 조류가 발견된 상태다. 자동차는 물론 항공기 연료로도 사용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우리는 뒤늦게 시작한 만큼 한양대·인하대 연구팀과 공동 연구를 해 시간을 단축하려 한다. 한양대 팀이 지방을 가장 많이 만들어 내는 조류를 찾아내면 인하대 팀이 배양기술을 연구하고, 에너텍이 생산기술을 개발하는 구도다.”

-다른 대체에너지나 육상작물에 비해 경제성이 있을까.
“수소에너지가 경제성을 갖는 데 30년가량 걸린다고 하는데 해양 바이오는 이보다 훨씬 빨리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게 학계의 전망이다. 다른 작물보다 효율도 훨씬 높다. 자기 복제로 증식하는 조류는 영양 등 조건만 갖춰지면 급속히 늘어난다. 씨를 뿌려 수확하는 데만 3~4년이 걸리는 유채 등 육상작물보다 회전 주기가 훨씬 짧다.”

-부산물에 의한 2차 오염 문제는 없나.
“바이오 디젤을 만든 뒤 남는 찌꺼기 중 10%가 글리세린이다. 질소와 섞어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들면 비누·세제·화장품의 원료가 된다. 나머지는 다시 미세조류를 배양하는 영양분으로 재활용된다.”

2002년 설립된 에너텍은 지난해 580억원의 매출을 올린 국내 최대 바이오 에너지 기
업이다. 2400억원가량인 국내 바이오 디젤 시장의 약 24%를 차지하고 있다. GS칼텍스와 쌍용·현대정유 등이 주 고객이다. 연간 8만kL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경기도 평택에 두고 있다. 지난해 가동률이 50%에 머물렀지만 김 대표는 장기적 원료 확보가 더 걱정이다.

-곡물 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인가.
“식량 수요에 바이오 에너지 수요까지 겹쳐 국제 곡물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2007년 말레이시아 클란탄주에 분당 크기(1785㎡)의 팜 농장을 확보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원료론 연간 생산량의 7분의 1을 겨우 채울 수 있을 뿐이다. 바이오 에너지를 육상작물에 의존해선 한계가 있다. 해양 바이오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바이오 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높지 않은 것 같다.
“주유소에서 파는 디젤 중 바이오 디젤 함량을 5%로 높인다는 게 정부 정책이지만 아직은 1.5%에 머무르고 있다. 일반 차량의 5%, 버스는 100%를 바이오 디젤로 쓰고 있는 독일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에너지 자급이라는 큰 틀에서 정부와 정유사, 바이오 에너지 업계의 협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녹색성장’ 추진에 기대가 많겠다.
“아직 의욕에 비해 시스템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 특히 정책융합이 필요하다. 바이오 에너지만 해도 유가 문제는 국토해양부, 세제는 기획재정부, 보급은 지식경제부 등으로 창구가 나뉘어 있다. 환경이나 농·어업 관련은 또 다른 부처들이 관계돼 있다. 힘을 한데 모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그랜드 플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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