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해외주재원 경비절감 복리후생비 축소 임금동결도 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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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요즘 적지않은 직장인들이 해외근무를 꺼리고 있다.후진국은 물론 선진국 근무도 그렇게 반기지 않는 추세다.각종 복리후생비 감소등 여건악화도 그렇지만 열악한 조건속에서 개척정신을 갖고 근무해 보겠다는 열의가 많이 약해진 때문이다. 편집자

싱가포르의 LG그룹 동남아지역본부에 근무하는 임병익(任炳益)차장은

최근“이곳 싱가포르의 많은 한국기업 주재원들이 근무여건면에서 종전보다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아졌지만 이를 본사에 하소연할 엄두를

못내고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에 나가있는 한국기업의 한

상사원은“경비절감을 이유로 올해초부터 본사가 김치.된장.간장등

부식지원을 중단해 국내 친척들이 보내준 것을 먹고 있다”며 불만섞인

표정이었다.

저축등 재산형성 측면에서도 예전처럼 해외근무는 별로 유리하지 않고

더구나 부모를 모셔야 하는 입장의 직장인은 해외근무를 더욱 꺼리게 된다는

것. 중.고생 자녀를 둔 주재원들의 경우 귀국후 국내 대학입시나 학교적응을

위해 별도의 과외를 시켜야 하는등 고민이 많아진 점도 직장인들의 해외근무

기피요인이 되고 있다.

㈜쌍용의 남상덕부장은“사내 공모를 통해 뽑던 종전의 해외주재원

기용제도가 최근 유명무실해졌다”며“경기가 안좋을수록 실적에 대한

부담과 본사의 빠듯한 지원으로 해외주재원 인기는 더욱 떨어지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의 임금동결.환차손등도 인기 하락을 재촉=주요 대기업들이 고비용

해결을 위해 해외주재원들에 대한 임금동결등 각종 비용 줄이기에 나서자

주재원들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급등한 원화 환율로 생긴 환차손 때문에 실질적으로 주재비용이 깎이는

결과를 낳는 것도 해외주재원들의 고민거리. 선경그룹은 이달 12일

해외주재원 1백60명에 대한 임금 동결을 발표했다.특히 다른 지역보다

임금이 다소 높다고 판단된 베이징(北京) 주재원들의 경우 오히려 임금을

다소 줄였다.해외주재원 임금을 2년마다 조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2년간

임금이 동결된 셈. 세계경영을 적극 추진해온 대우그룹도 해외주재원

비용절감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전경련 방침에 따라 임금등 해외주재원 비용 실태조사를 마무리 짓고

조만간 기본안을 확정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다음달 1일부터 미주지역 주재원들에 대해 연봉제를

도입한다.삼성은 앞으로 그동안 실시해온 개인별이 아닌 총액인건비

기준으로 해외지사의 임금을 관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삼성그룹 해외인사팀의 고동진차장은“해외에서 고생하는 주재원들의

임금을 개인별로 깎는다는 것은 사기진작 차원에서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꼭 필요한 인력만 파견하는등 효율적인 조직관리를 통해

관련경비를 줄여 나간다는 게 우리 그룹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코오롱그룹도 올해 해외주재원들에 대한 임금을 동결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평균 2~3년마다 해외주재수당을 인상,조정해온 한화그룹은

올해는 아직 조정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어 사실상 동결할 것으로 보인다.

환율문제 역시 해외주재원들의 큰 고민거리. 대부분 기업들이 해외주재원

급여는 국내급여와 현지생활급여를 현지화폐로 지급하는게 원칙.그러나

지급액을 원화 기준으로 하고 있어 요즘 같이 달러당 원화 환율이 올라갈

때는 가만히 앉아서 감봉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환율이 4%이상 차이나면 매년 3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조정을

해오고 있다.LG그룹도 10%이상 환차손익이 발생하면 조정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그러나 코오롱.한화.효성그룹등 대부분 그룹들은 해마다 한차례 환율변화를

조정한다.

◇선진국 근무도 기피하는 경향=해외주재원 기피현상은 과거와는 달리

후진국이나 개도국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선진국은

생활여건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지만 사업실적을 올리기가 그만큼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휴스턴에서 5년6개월동안 근무하다 최근 귀국한 삼성물산의

차선영차장은“미국시장에서 한국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실적을

올려야 하는 주재원들의 스트레스는 개도국등에 비해 훨씬 심하다”고

말했다.기업들은 한번 나가면 5년,10년등 비교적 오랜 기간 근무를 보장해

안정감을 갖고 근무케 하는등 유인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수호.신성식.이승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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