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이病' 의심 고성 주민 르포] "아파 죽기 전에 굶어 죽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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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고성군 삼산면 병산리 주민 이필남씨(76)가 9일 이타이 이타이병으로 의심되는 고통을 호소하며 다리를 걷어올려 보이고 있다. [고성=송봉근 기자]

"도대체 '이타이 이타이병'이 맞기는 맞는 거요? 이렇게 시간만 끌다가는 진짜 병에 걸리기도 전에 농산물 못 팔아 굶어죽게 생겼어요."

경남 고성군 삼산면 병산리의 이장 양창수(58)씨는 9일 "주민의 체내 카드뮴 농도를 놓고 환경단체와 정부가 벌이는 '이타이 이타이병'여부 공방 때문에 주민들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90여가구 200여명의 주민 사이에 '이타이 이타이병'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는 것은 물론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주문이 끊기고 마을 주변 횟집 10여곳도 매출이 급감했다.

마을 입구의 B식당 주인 김모(50)씨는 "부산.마산에서 손님이 하루 서너팀씩 찾았는데 뚝 끊겼다. 이 손해를 누가 보상해 주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사정은 바닷가를 끼고 있는 고성군 일대 횟집들도 마찬가지다. 삼산면뿐만 아니라 주변 하일.도산면 일대 50여곳 횟집들까지 손님이 크게 줄었다.

고성 쌀의 판매난은 훨씬 심각하다.

지난 3일 환경운동연합의 발표 이후 고성지역 대표적 쌀 브랜드인 '공룡나라 쌀' 가공공장에는 하루 20여건씩 오던 주문이 아예 끊겨버렸다.

쌀 가공공장 장기원(48)대표는 "지역의 대표적 쌀 브랜드로 키우느라 3년 동안 투자한 1억3000여만원이 도루묵이 돼버렸다"고 한숨지었다. 공룡나라 쌀은 지난해 대도시의 백화점.쌀집 등 170여곳에 2억8000여만원어치가 팔린 유명 브랜드였다.

전국농민회 경남도연맹 김순재 대외협력국장은 "정부가 오염 예상지역 쌀을 모두 수거해 안전성 여부를 검사한 뒤 오염된 것은 폐기하고 나머지는 안전하다는 것을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훈 군의원도 "시간이 흐를수록 여파가 고성군 전체로 확산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마산.창원 환경운동연합의 이인식 의장은 이날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종합적인 역학조사를 서두르지 않을 경우 경남도 의사회 등의 협조를 받아 우리가 직접 역학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고성=김상진 기자<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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