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의 13억 경제학] U턴하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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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우리 경제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툭툭 털고 일어섰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금모으기는 그 중에 하나 일 수도 있습니다.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될 게 차이나 팩터입니다. 지난 10년 간 우리 경제가 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우리에게 무슨 큰 선심을 베푼 것은 아닙니다. 세계 경제의 큰 흐름 속에서 중국이 성장을 하게 됐고, 우리는 그 옆에서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눴을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이유는 지난 10년 동안 작동했던 이 글로벌 경제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무엇이었을까요?

아시아-중국-서방시장으로 이어지는 3각 무역체계 였습니다. 1992년 들어 중국은 보다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그 해 우리는 중국과 수교했지요). 대만 한국 일본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저임 노동력을 노리고 중국으로 갔습니다. 중국은 생산단지, 세계공장이 된 겁니다.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과 반제품은 아시아 국가들이 제공했습니다. 이 부품을 중국에서 조립해 만든 완제품은 미국 유럽연합 등 서방으로 수출됐습니다.

한국(부품)-중국(조립)-미국(시장)이라는 3각 무역체계가 작동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지금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미국시장이 죽어버린 것이지요. 그러니 조립을 담당했던 중국이 손을 들고, 부품을 수출하는 한국이 또 다시 충격을 받게 되는 겁니다. 오히려 경제규모가 작은 한국이 더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미국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한 다시 작동되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탈출구를 찾아야 할까요. 누군가가 시장을 제공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시장을 찾아야 할까요? 아시아 스스로가 시장을 창출해 내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역시 중국밖에 없습니다. 때마침 중국이 내수확대 정책을 강하게 추진한다고 하니 기대해 봄직 합니다.

오늘 신문에 쓴 칼럼은 그런 점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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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오늘도 쉰다. 춘제(春節·설) 공식 휴일이 31일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불경기로 산업현장의 휴가는 예년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 연휴가 끝날 즈음 중국 언론에는 ‘휴일경제(假日經濟)’라는 말이 꼭 나온다. ‘장기 휴일이 창출하는 경제효과’라는 뜻이다. 백화점 매출액이 얼마나 늘었고, 여행객 수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등이 수치로 제시된다.

휴일경제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9년이다. 중국은 당시 건국기념일(10월 1일)·춘제·노동절(5월 1일) 등 휴일 기간을 각각 1주일 이상 늘렸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자는 게 목적이었다. ‘많이 놀게 해줄 테니 쇼핑도 하고, 여행도 가고, 마음껏 돈을 쓰라’는 것이었다. 청명절·단오절 등으로 휴일이 다소 분산됐지만 ‘홀리데이 이코노미’는 지금도 핵심 내수 확대 수단 중 하나다.

휴일경제에서 보듯, 10년 전에도 중국 경제의 화두는 ‘내수(內需)’였다.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는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가 얼어붙자 돌파구로 내수시장을 선택했다. 매년 1500억 위안(약 30조원)가량의 건설국채를 8년 동안 발행, 사회간접자본 건설 분야에 쏟아부었다. 중국 대륙 곳곳에 도로 건설공사가 벌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위기다. 시기와 원인은 달라도 중국이 뽑아든 위기극복의 카드는 같은 내수 확대다. 4조 위안의 경기부양 패키지는 이를 상징한다. 건설 부문이 도로에서 철도로 바뀌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곧 추가 부양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중국에 또다시 건설 붐이 일어날 모양이다.

일각에서 중국이 케케묵은 정책을 다시 뽑아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이미 내수 확대 정책이 중국 경제를 살리기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연 그럴까? 하나하나 따져보자.

원 총리가 전임 총리의 정책을 되밟아야 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세계무역기구(WTO) 때문이다. 2001년 말 WTO 가입으로 대외무역 환경이 호전되면서 중국의 수출은 매년 30% 안팎 급증했다. 내수 확대 정책은 뒤로 밀렸다. 수출만으로도 10%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수출이 문제다. 경제위기로 해외 수요가 줄어들면서 중소 수출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있다.

넘쳐나는 실업자로 민심도 흉흉하다.

중국은 해외시장에 의존한 성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원로 경제학자인 우징롄(吳敬璉) 국무원발전연구센터 연구원은 “수출에 기댄 성장으로는 중국 경제의 미래가 없다”며 정책 당국자들을 다그치고 있다. 관리들 역시 “이제 미국(수출시장)에서 벗어나 중국(내수시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중국의 대(對) 미국 정책이 최근 공격적으로 바뀐 게 이를 반영한다. WTO에 가입하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었던 10년 전과는 정반대다.

중국은 미국에 다가갔다가 '아 뜨거'하고 유턴했다. 그러기에 원자바오의 내수확대 정책은 주룽지의 그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지금 중국의 내수정책은 10년전 정책과 다르다. 내수 확대 정책에도 질적 변화가 뚜렷하다. 중국은 소비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는 낙후된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교육·노후·위생 분야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 민간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과감한 규제 철폐안도 검토 중이다. 농촌 도시화는 내수 확대의 새 동력이다. 농촌에 저가 가전제품 보급사업이 시작됐고, 3월부터는 1.3L 이하 자동차도 대상에 포함된다. 모두 시장구조를 뜯어 고치는 일이다.

이 같은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전과 달리 정책 내용이 정교하고 현실성이 높아졌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경제위기는 항상 ‘파워 시프트(힘의 이동)’라는 후폭풍을 불러 왔다. 중국은 10년 전 터진 아시아 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아시아 경제의 맹주로 등장했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는 10년 후 중국을 세계경제의 강자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동력은 역시 내수시장이다.

우리가 중국의 내수시장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고,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대중국 정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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