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국상표 해외서 봉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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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로만손은 지난 13일 손목시계'로만손(ROMANSON)'브랜드의 사용권을 놓고 중국 회사와 벌인 4년여의 상표침해소송에서 승소,중국 수출길을 열었다.

지난 93년 중국 현지 바이어를 통해 수출계약을 했지만 현지인이 먼저 중국 특허청에 상표를 등록,수출길이 막혀 중국시장을 영영 놓칠 뻔했던 것. 비록 이번에 승소했지만 자사 브랜드를 중국에 등록해 놓지 않은 이유 하나만으로 이 회사는 연간 5백만달러규모의 중국 수출물량이 꽁꽁 묶여 그동안 2천만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조선맥주는 주력상품인 하이트(HITE)맥주를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자사 상표로 판매하고 있지만 대만에는'청산도맥주'라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수출하고 있다.대만의 음료업체인 보신무역공사가'해특(海特)'이라는 상표에 HITE 영문을 합친 브랜드를 등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조선맥주는 94년부터 보신측과 줄다리기를 했고 최근에야 가까스로 상표중 HITE 영문을 빼겠다는'취소위임장'을 받아내 현지에 상표를 출원,앞으로는 HITE 브랜드로 대만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이와는 달리 태평양(PACIFIC Foundation).피어리스(피어리스).벨금속(손톱깎기)처럼 현지에 상표를 등록했는데도 버젓이 유사상표와 모조품이 나돌아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벨금속은 중국에서 모방 제품이 싼값에 유통돼 침해업체 파악에 나섰으나 확인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수출이 늘어나고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한때 선진국 유명상표 모방 천국(?)으로 불리던 한국이 오히려 동남아시아.남미등 개발도상국에서 상표를 도둑맞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상표를 도용당할 경우 불량품이 나돌아 신용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국제분쟁에 휘말리면 수출을 포기하거나 상표를 바꿔야 해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잘 알려진대로 한국담배인삼공사의 인삼제품'정관장(正官庄)',전한실업 비디오폰'VIDEOMAN',㈜화승'LECAF',농심'신(辛)라면'등은 등록을 안해놔 수출도 못하고 소송을 걸어 놨지만 패할 경우 상표를 바꿔야 할 판이다. 전한실업 관계자는“지난 90년초 주택용 비디오폰을 개발,세계 40여국에 수출해 왔는데 오스트리아에는 현지인이 상표를 먼저 등록해 놓아 사실상 브랜드를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특허청이 최근 특허.실용신안.의장.상표등 산업재산권 다출원 3백대기업과 협회.조합등을 대상으로 실시한'해외에서의 국내 산재권 침해실태'조사에 따르면 세계 28개국에서 46개업체가 73건의 산재권을 침해받고 있다.

이중 도용.모방이 상대적으로 쉬운 상표가 63건이나 됐으며 특허.실용신안과 의장도 4건과 6건씩 침해당한 것으로 분석됐다.

산재권을 침해한 나라로는 중국이 23건으로 가장 많고,홍콩.대만.말레이시아등 아시아 국가가 전체의 57.5%를 차지했다.다음으로는 멕시코.아르헨티나.칠레.페루등 중남미 개발도상국가들이 23%로 나타났다.

우리 수출시장에 상표를 포함한 산재권 침해가'암초'로 등장함에 따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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