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편회오리>中. 새로운 실세 금융감독원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부가 확정한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의 요지는'통합을 통한 효율'이다.은행.증권.보험으로 각각 나뉘어 있는 기존 감독기구를 하나로 합쳐 감독라인을 단일화하고 이를 통해 금융감독의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기구만 커지는게 아니다.말이 금융감독위원회이지 금융기관들을 좌지우지할 막강한 장관급 중앙부처나 다름없게 된다.기구형태나 영향력면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흡사하다.금융시장의 업무영역 벽이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에따른'감독기관 겸업화'추세 역시 올바른 방향이다.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감독체계 개편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

당장 풀어나가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첫번째 제기되는 문제는 통합감독기구의 내부적 융화와 재편이다.3개 감독기구를 합친 1천5백여명의 직원들을 어떻게'헤쳐모여'하느냐는 기초적인 행정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일반기업의 M&A같으면 효율성에 입각,기구 자체를 통폐합하고 사람도 솎아내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그런 것은 엄두도 못낼 입장.3개 감독원 기존의 기구와 사람들을 그대로 가져갈 경우 감독체계의 효율화는커녕 공룡화현상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감독권이 집중되고 일원화되면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금융기관에 대해'군기(軍紀)'잡기는 훨씬 쉬워진다.벌써부터 금감원에 대해'금융안기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이번 개편안은 금감원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선진 감독기법을 도입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선진국에서는 이미 금융기관의 경영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금융기관 스스로 내부통제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데 감독의 비중을 두고 있다.

문제가 생긴 다음에야 비로소 검사역들이 우르르 몰려가 요란스럽게 장부를 뒤지는 일은 없다.미리 자동경보가 울리는 소프트웨어를 깔아두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관청이 되는 통합감독원이 과연 얼마나 금융기관 현장에 깊이 파고들어갈 수 있을지도 주목거리다.상호신용금고에 대한 검사의 경우 은행감독원보다 신용관리기금이 훨씬 엄격하고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후발업체'로서의 경쟁의식과 금고가 부실화되면 자기들 기금 돈으로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감독의 강도(强度)를 높여놓은 것이다.과연 이런 효율과 근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쨌든 3개 기관의 물리적 통합은 당분간 금감원의 업무효율을 떨어뜨릴 것이 뻔하다.직원간의 이질감이나 알력은 보나마나다.우리의 조직풍토상 공채(公採)직원이 간부로 크기까지 직원들은 저마다'어디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편을 만들기 쉽다.

이런 의미에서'감독을 어떻게 잘 하느냐'라는 거창한 과제에 앞서'조직을 어떻게 잘 굴러가게 하는가'라는 현실문제가 금감원에는 더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 틀림없다.

남윤호 기자

<사진설명>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과 심일선 한은노조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증권.보험감독원 노조대표들이 17일 한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금융개혁안 철회를 위한 공동투쟁을 선언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