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성않는 한총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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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석(李石)씨 상해치사사건 이후 쏟아지고 있는 사회각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한총련(韓總聯)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PC통신망을 통해 이석씨의 죽음을 놓고 프락치들이 학생을 가장해 폭행한 정치모략극이라고 하더니,느닷없이 정권퇴진을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쇠사슬농성에 들어갔다.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자기반성과 변화의 노력을 보이기는커녕 일련의 사태를 단순히 전술적 궁지로 여기고 역공세를 취하는 그들의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그들의 현실판단능력이 고작 이 정도라면 한심하다.소수 소외계층에 피난처를 제공해 왔던 명동성당까지 그들의 폭력성을 질책하며 농성해제를 요구하는 것은 한총련이 지금의 모습으론 이 사회에 발붙일 곳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다.더구나 산하대학에서도 학생운동방식에 대한 자성과 함께 한총련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총련의 현상황은 편협한 이념성과 관료화된 조직,비판과 반성을 허용하지 않는 경직성이 초래한 것이다.조금이라도 주변과 스스로를 살피는 사려가 있었다면 지금의 상황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이석씨의 죽음이 그 단적인 예다.

한총련의 지역조직인 남총련은 또 전남대에서 숨진채 발견된 이종권씨의 폭행치사 혐의를 받고 있다.전남대 총학생회는 남총련 간부들이 李씨를 프락치로 의심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집단폭행했음을 인정했다.李씨의 직접사인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지만 경찰의 1차 부검결과 몸 곳곳에 멍이 들고 피하출혈이 있었으며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였음이 드러나 이석씨사건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불과 1주일전에 이같은 일을 벌이고도 무고한 시민을 또 다시 죽였으니 철이 없어도 이 정도일 수 있는가. 한총련은 지금 당장 억지주장과 행동을 멈추고 사태전반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사죄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보여야 한다.지금 우리사회는 한총련의 차원을 넘어 학생운동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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