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보통신부 김창곤 기술심의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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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 휴대폰의 성공은 여기에서 멈출 것이 아닙니다.무선시내망.플림스(미래공중육상이동통신)등 앞으로 응용해야 할 작업이 산적해 있습니다.”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의 무선통신분야를 일약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린 CDMA 개발을 주도했던 사람중 한명인 정보통신부 김창곤(金彰坤.48.사진)기술심의관으로부터 개발의 뒷얘기와 향후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CDMA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경쟁이다.당초 신세기통신이 1개사 장비업체 제품만 사용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삼성전자.LG정보통신.현대전자가 피를 말리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CDMA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이동전화는 이동중에도 끊어지지 않고 통화가 가능하게 해주는 핸드오프기술이 핵심이다.95년 2월 연구원들과 한밤에 서울시내를 고속 질주하며 실험하다 처음 핸드오프됐을 때 휴대폰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중간중간 좌초 위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2년전 여름 개인휴대통신(PCS) 서비스방식으로 CDMA와 유럽식 시분할다중접속(TDMA)방식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당시 일부 업계에서 TDMA로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큰 곤욕을 치렀다.” -CDMA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미 퀄컴사와 로열티를 둘러싼 잡음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데.“어쩔 수 없다.초기에 기술이 없는 한국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에는 국내 기업들이 퀄컴을 인수할 수도 있었다는데.“아마도 인수했다면 지금같은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미국 기업은 아시아 기업에 인수당하면 핵심인력이 직장을 옮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플림스의 표준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다.또 위성통신에서도 CDMA가 중요한 표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金심의관은 한양대 전자공학과와 산업대학원 전산과를 졸업한뒤 77년 기술고시에 합격,이듬해 체신부에 몸을 담기 시작해 올해로 만 20년간 기술개발만 담당한 정통 기술관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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