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연, 철거민에 망루 설치법 가르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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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본부가 22일 밝힌 서울 용산 재개발 농성자 사망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다. 진압작전에 투입된 경찰특공대원과 농성자들의 진술을 통해 확보한 내용이다.

◆검찰이 밝힌 사건 과정=검찰에 따르면 서울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회 이모 위원장은 14일 세입자들에게 20일간의 생필품과 쇠톱·유리구슬·새총 등을 구입하라고 지시했다. 다음 날 대책위원들은 전철연 소속인 인천 도화지역의 철거대책위원회 측에 농성을 벌일 망루를 조립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16일 대책위 관계자들은 인천 도화동 고물상 공터에서 전철연 측으로부터 망루 설치 방법을 배웠다. 망루 재료에 쓰일 함석·합판·비계도 샀다. 여성 세입자들은 농성에 사용할 화염병 400개와 염산병 50개를 제작했다. 새총으로 날릴 골프공만 600개들이 17부대(1만여 개)를 마련했다. 농성 준비가 끝나자 이들은 18일 새벽 남일당 건물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시위 장비를 운반할 크레인이 고장나 실패했다. 19일 진입에 성공한 뒤 농성에 들어갔다. 세입자와 전철연 소속 회원들로 구성된 농성자들은 식사 때를 제외하곤 늘 복면을 썼다.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다. 철거 용역들이 이를 발견하고 진입하려고 하자 농성자들은 화염병을 던지고 골프공을 쏘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오전 8시20분쯤 화염병 하나가 근처 건물에 떨어져 화재가 발생했다. 낮 12시10분 경찰이 농성자들이 망루를 설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살수차로 물을 뿌렸다. 농성자들은 화염병·염산병·벽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일부는 지나가는 차량과 행인을 향해 던졌다.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은 농성을 그만둘 것을 권유했다. 20일 오전 6시30분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경찰특공대는 계단을 통해 옥상에 올라가 농성자 검거를 시도했다. 크레인을 이용해 컨테이너를 타고 옥상 진입작전도 함께 폈다. 경찰은 농성자들이 피신한 망루의 문을 뜯고 내부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농성자들은 망루 1층에서 쇠파이프로 저항했다. 일부는 연행됐고 일부는 2층으로 도망갔다. 이때부터 농성자들의 화염병 공세가 거세졌다. 경찰특공대가 소화기로 불을 끄면서 차례차례 3층까지 장악했지만 인원이 부족해 전열 정비 차원에서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다시 3층 정도 이르렀을 때 위쪽에서 화염병이 갑자기 떨어진 뒤 밑바닥부터 불이 붙어 올랐다고 한다. 이 불로 3층에 쌓여 있던 시너 통이 폭발한 뒤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했다. 곧 망루가 무너졌다. 불길이 번지자 대부분의 특공대원은 빠져나왔지만 김남훈 경사가 몸을 피하지 못해 숨졌다. 농성자 4명도 4층에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탈출했다. 나머지 농성자들은 망루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화재 원인 놓고 상반된 의견=검찰은 농성자 중 누가 화염병을 던져 화재를 발생케 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정확한 발화 순간과 지점도 명확하지 않다. 이는 화재 감식 결과를 통해 규명될 전망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경찰이 컨테이너로 망루를 여러 차례 밀고 주요 기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인화물질이 한 군데로 몰려 불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이철재·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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