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접대비>2. 접대, 어떻게 이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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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매출액 70억원 규모인 K기계금속제조업체의 J사장이 단골 룸살롱에 지불하는 술값은 월평균 2천만원.물론 거의 대부분 접대용이다.지난해 12월엔 접대건수가 많아 4천만원 가까이 지출됐다.그는 5개의 법인용 접대카드를 갖고 적절히 분산 사용하고 있다.

“저는 맛깔스런 안주에 소주마시기를 즐기지만 그런 식으로 접대했다간 욕만 먹죠.룸살롱에서 비싼 양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른뒤 애프터로 이어지는게 정해진 코스입니다.”연초 감사원 실태조사반에게 털어놓은 J사장의 고백이다.고급 룸살롱에선 대략 손님 1인당 40만~50만원이 기본.5~6명이 가면 2백만~3백만원 들어간다.

A건설회사 관계자.“접대를 제대로 하려면 호텔까지 거쳐야죠.접대받는 쪽에서 노골적으로 희망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주로 얼렁뚱땅 호텔로 갑니다.호텔비와 아가씨 특별 서비스료는 당연히 제가 부담하죠.질펀한 밤을 보내고 나면 일처리가 훨씬 쉬워지게 마련입니다.” 그는 일행중 외박을 원하지않는 사람에겐 비용만큼을 교통비조로 준다고 덧붙였다.“그래야 공평하죠.” 룸살롱에선 현금만들기 카드사용도 횡행한다.

강남의 R룸살롱 Y마담은“단골손님중 술값보다 많은 액수를 카드로 계산한뒤 추가된 만큼 현금으로 되돌려달라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대기업이나 공기업의 간부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으로 실제비용 이상의 접대비를 쓴 것처럼 영수증을 위조하고 남는 돈을 빼돌린다는 얘기다.일부는 이렇게 만든 현금을 카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비용에 충당하기도 한다.팁이나 호텔비등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개 손비처리되는 접대비 한도는 적고 신경써야할 접대대상은 많다보니 이들처럼 접대비에서 따로 돈을 떼어내기가 힘들다.그러나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경우 손비처리되는 접대비가 상당한 규모여서'접대하고 용돈 빼쓰는'짭짤한 재미(?)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사회풍속도의 변화와 함께 접대방식도 레저.스포츠형으로 달라지고 있다.

웬만한 기업들은 보통 1~2개의 골프회원권과 스포츠센터회원권을 접대용으로 갖고 있다.골프나 수영.스키등 레저를 즐기는 실속파들을 접대하기 위한 것이다.

S제조업체 K사장은 그중에서도 골프를 최고로 친다.“개인적으로 운동도 되고,보통 5시간 정도 걸리는 게임도중 자연스럽게 얘기도 나눌수 있어 접대론 제격이죠.특히 골프에 매달려 있는 상대를 잘 관찰하면 그 사람의 성격을 속속들이 짐작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는 또“정말 만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골프회원권을 선물로 주고 가끔 같은 골프장에 가 운동하면서 여러가지 청탁의 기회를 만든다”고 덧붙였다.골프회원권은 적어도 수천만원,비싼 것은 수억원대에 이른다.이 정도면 접대가 아니라 명백한 뇌물이다.

골프의 또다른 장점은 게임하면서 현금을'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다는 점.내기골프를 하면서 일부러 져주는 것이다.보통 1홀에 10만원 정도로 내기를 걸면,전체 18홀에 1백80만원까지'내기'라는 형태로 현금을 건넬 수 있다.

H골프장의 캐디 J양.“척 보면 접대골프인줄 알죠.접대하는 사람은 자기 공에는 신경도 안써요.상대방의 공이 어디로 가는지만 보고,잘 치는 사람이 일부러 실수해 접대받는 사람쪽으로 공을 보낸뒤 같은 방향으로 가면서 사업 얘기를 하죠.”그녀는“코미디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확실한 접대는 현금.T제조업체 K사장은“돈은 눈에 띄지도 않고 시간도 절약되고,무엇보다 확실하다”고 강조했다.“아직 나는 돈 싫다고하는 사람 못봤습니다.한번에 안되면 두번,두번에 안되면 세번,거듭 돈들고 찾아가 하소연하면 안되는 일이 거의 없어요.돈을 받으면 부담감 때문에 한번쯤은 도와주거든요.”그는 돈의 위력에 확신감을 갖고 있다.

선물도 과거의 상품권이나 선물세트같은 것들은 많이 사라졌다.대신 패키지 여행상품권이나 스키장.콘도.사우나 이용권 같은 레저용 선물,발레.관현악단공연 같은 비싼 문화행사 티켓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휴가철에는 외국여행을 공짜로 다녀올 수 있는 여행상품권이 가장 세련된 접대로 통한다. 오병상.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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