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머리아닌 몸으로 체득해야 - 푸른나무 조용호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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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다마곳치요? 다른 장난감보단 더 낫다고 생각해요.전자생물도 생물 아닙니까.생물을 기르는 일은 아이들에게 책임감과 주의력,그리고 참을성과 봉사정신을 알게 합니다.그러나 화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전자생물이 진짜 생물과의 만남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조용호(40.푸른나무 대표)씨는 자연과 더불어 산다.그는 또 자연을'팔아먹고'산다.도깨비새우.누에기르기.올챙이기르기.나비기르기…등이 그가 파는 자연이다.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자연의 일부를 포장.규격화해 파는 장사치다.

그러나 그는 '자연의 전도사'임을 자임한다.

컴퓨터 세일즈를 그만두고 난데없이 누에를 기르겠다고 나선 것은 지난 91년초.미국 출장길에 시카고의 한 박물관에서 아이들의 현장학습을 보면서 받은 감명을 잊지 못한 탓이다.자연을 재현해놓고 실물체험을 통해 만지고 냄새맡고 느낀뒤 묻고 떠드는 미국의 아이들.일본 출장에서도 그는 똑같은 광경을 봐야 했다.

당연히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 한가운데 책상머리에 앉아 그림.사진.비디오만으로 자연을 익히는 우리 아이들이 오버랩돼 떠올랐다.아버지로서,동네 개울에서 미꾸리와 붕어를 잡고 놀며 살아온 인생 선배로서,그리고 그 자연을 후대에게는 언감생심 구경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세대로서 자신이 못견디게 싫어졌다.

89년 무턱대고 잠업시험장의 이상풍교수를 찾았다.“곤충기르기를 상품화하고 싶다.아이들에게 자연을 가깝게 배달하는 일을 하고 싶다.”李교수는 두말 않고 누에기르기의 모든 것을 성심껏 알려줬다.교원대 박시룡교수.대전대 남상호교수등 국내 곤충학자들도 만났다.

푸른나무 누에기르기 세트 1호가 상품화돼 나온 것이 91년 4월.2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알-애벌레-번데기-성충으로 변화하는 누에의 성장모습을 사육상자에 담을 수 있었다.

알.먹이.설명서.확대경등 모든 것을 직접 고안하고 만들어야 했다.그러나 상품화된 누에는 걸핏하면 죽었다.애프터서비스를 위해 문제가 된 집을 찾아나섰다.원인은 무심코 뿌린 살충제,모기향,아빠의 담배연기등….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의 거친 손과 부족한 주의력,조급한 마음이 문제였다.

그는 기르기 쉽고 변화가 다양한 생물들을 골라 매년 1~2종씩 꾸준히 상품화해 나갔다.지금은 20여종을 넘어섰다.

지난해 지금의 용인농장으로 사업장을 옮기기 전까지 서울 수유리 자택은 완전히'곤충의 집'이었다.방은 말할 것도 없고 옥상.마당.지하실까지 개구리.누에.사마귀.나비로 들어찼다.다행히 아이들이 좋아하고 부인이 이해해줬다.

그는 자신이 곤충을 기르면서 배우고 깨달은 소중한 경험 모두를 곧 책으로 엮을 생각이다.다음달 출간될'곤충기르기(가제)'가 그것이다.

“자연은 머리로 익히기보다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란 사실을 쉽게 잊는 어른들과 우리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을 뿐입니다.” 글 이정재.사진 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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