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루 3층 오를 때 바닥서 불길 치솟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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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용산 재개발 농성자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본부 관계자는 6명의 희생자를 낸 화재에 대해 “농성자들이 망루 1층에 뿌린 시너에 화염병의 불이 옮겨붙어 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수사본부는 경찰특공대가 1차로 망루에 들어가 농성자 일부를 연행하고 잠시 철수한 상태에서 시너를 뿌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불은 경찰의 2차 진입 직후 일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작전에 투입된 특공대 대원들은 “1차 진입 때는 시너 냄새가 안 났으나 2차 진입 때 냄새가 진동했다”고 진술했다. 일부 대원은 검찰에서 “4층 구조 망루의 3층으로 올라가려 할 때 4층에서 날아온 화염병으로 1층에서 불길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최윤식(39) 경찰특공대 1제대 3팀장은 “2층 정도 올라갔는데 갑자기 화염병이 밑에 떨어지더니 화염이 망루 층마다 타고 동시에 확 올라갔다. 그러고 나서 폭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화염을 피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관계 기사 3, 12면>

검찰은 농성자 측 주장의 진위도 명확히 가릴 계획이다. 농성자 측은 “경찰이 쏘아댄 물대포 때문에 망루 안 농성자가 손에 들고 있던 화염병이 망루 3층에 있던 인화물질 통으로 날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망루 4층에서 최후까지 저항하다 연행된 농성자 4명이 모두 화염병 부분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반정부 성향의 100여 개 단체로 꾸려진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에서 “컨테이너를 동원한 진압이 근본적 참사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는 “체포한 농성자로부터 ‘이달 초쯤 인천시 도화동에서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간부들로부터 망루 설치와 경찰의 진압에 맞서는 요령 등을 배웠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현장에서 체포된 농성자 22명 중 화염병 투척 등 폭력을 행사한 7~8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수사본부는 경찰 특공대가 망루에 다량의 인화물질이 있는 걸 알면서 물리적 진압 작전을 펼쳤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경찰에 안전수칙 위반 등 과실이 있는지도 조사 중이다.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현 서울경찰청장)는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에 나와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심각한 불법 행위가 계속되면 무고한 시민들이 위협을 받을 수 있어 공권력을 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인명 희생이 빚어진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철거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7시부터 경찰의 진압에 항의하는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철재·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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