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업 병폐에 自省 목소리- 경영은 私物化 종업원은 파벌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도쿄=이철호 특파원]경영권의 사물화(私物化)와 근로자들의 뿌리 깊은 파벌.할거주의로 요즘 일본기업에 대한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규제완화 이후 일본경제의 운명을 과연 이들에게 안심하고 맡겨도 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전자오락 다마곳치 개발업체로 유명한 반다이는 최근 세가 엔터프라이즈와의 합병을 철회했다.합병으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되리라는 일반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합병후 처우에 불안을 느낀 반다이의 중간간부들이 합병 백지화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돌려 부장급의 90%,과장급의 80% 이상이 집단서명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지점의 채권거래 손실로 국제영업을 중단한 다이와(大和)은행도 사원들의 집단반발로 스미토모(住友)은행과의 합병에 실패했다.이같은 현상은 다이이치간쿄(第一勸業)은행과 도쿄미쓰비시(東京三菱)은행등 이미 합병에 성공한 경우도 마찬가지다.인사철이면 순환인사라는 이름으로 합병은행들끼리 서로 자리를 나눠 갖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일본은 내년부터 원활한 기업 인수.합병을 위해 지주회사제도를 부활시킬 예정이다.그러나“이런 상황에서 과연 진정한 기업 인수.합병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체질과 관행을 고치지 않는 한 설사 합병에 성공해도 물리적 결합에 그칠 뿐 화학적 결합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최근 터진 전일본공수(약칭 全日空.젠니쿠)의 인사파동과 노무라증권 스캔들은 일본기업의 이미지에 결정적인 먹칠을 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연구대상으로 삼을 움직임이다.관료출신 낙하산인맥들이 토박이 사장을 몰아낸 젠니쿠의 경우 중간관리직 3백명이 관료출신 명예회장과 회장에 대해 불신임 연판장을 돌렸다.이 파문으로 20년간 이 회사의 경영권을 사물화해 온 관료출신 경영진들이 몰락했고 이들이 내세운 허수아비 사장도 취임 보름만에 물러났다.

총회꾼과 결탁한 노무라증권스캔들은 전문경영인 출신의 일본경영진이 경영권방어를 위해서라면 윤리와 법을 내팽개치고 범죄집단과도 손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일본재계의 본산인 게이단롄(經團連)은 현재의 상황을'총체적 위기국면'이라고 규정할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경영의 투명성과 최고경영자들의 윤리의식이 확보되지 않으면 경제 전체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해 소니와 노무라증권은 사내출신의 임원승진을 대폭 억제하는 대신 사외(社外)중역 및 감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일본식 경영에서의 탈피를 선언했다.닛산자동차는 할거주의를 없애기 위해 사내의 각종 의사결정기구를 전임원이 참여하는 경영전략회의 하나로 통합했다.

또 총회꾼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다카시마야(高島屋)백화점과 아지노모토등은 주주총회를 완전공개했다.뒤늦게 국제적 기준에 맞추려는 일본기업들의 움직임이 하나씩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